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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64>주님의 기도(5) : 일곱 가지 청원 3... 매일 돌봐 주신다는 믿음 새기며 영적·물적으로 가난한 형제 돌봐야

아버지의 끝없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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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은 육신의 양식뿐 아니라 영적 양식도 포함된다. 사진은 미사 중 성체를 거양하는 모습. 평화신문 자료사진

주님의 기도 전반부가 하느님 아버지에 관한 것이라면 후반부는 이 땅에 사는 우리를 위한 기도입니다. 후반부는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로 시작합니다. 주님의 기도 일곱 가지 청원 가운데 넷째 청원입니다. 이 넷째 청원에 대해 살펴봅니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2828~2837항)


“오늘”이란 말은 일차적으로 현세적인 오늘을 뜻합니다. 우리는 오늘 필요한 양식뿐 아니라 내일 먹을 양식을 준비하는 데에 노심초사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34). 그렇다면 “오늘”이란 말은 신뢰심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교만하고 욕심이 많은 우리는 “오늘”로 만족할 수 없지만, 주님께서는 “오늘”이라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당신을 신뢰하라고 하십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먹을 만나가 하늘에서 내리자 “아무도 그것을 (내일) 아침까지 남겨두지 마라”(탈출 16,19)고 지시합니다. 즉 오늘 먹을 만큼만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 또한 만나를 내려주시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의 표현입니다.

이 오늘은 우리의 오늘이기도 하지만 또한 하느님의 오늘이기도 합니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가 매일 빵을 받으면, 그대에게는 매일이 오늘입니다. 만일 그대가 오늘 그리스도를 모신다면, 그분은 날마다 당신을 위해 부활하시는 것입니다…오늘은 말하자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는 때입니다.”

“일용할”이라는 낱말은 오늘과 중복되는 표현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께 대한 “우리의 ‘온전한’ 신뢰를 굳게 하도록 ‘오늘’이라는 낱말을 교육적으로 반복한 것”(2837항)입니다. 질적인 의미에서 “일용할”이란 표현은 생명에 필요한 것을 가리키며, 더 넓은 의미에서는 살아가는 데 충분한 모든 재물을 가리킵니다. “일용할”로 번역한 이 낱말은 글자 그대로는 ‘반드시 필요한’이라는 뜻을 지닙니다. 반드시 필요한 것, 그것 없이는 우리 안에 생명이 있을 수 없는 그것은 바로 생명의 빵, 곧 그리스도의 몸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일용할 양식”이란 물질적이고 영적인 합당한 모든 재화를 말합니다.

이 양식을 “저희에게 주소서” 하고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께 청합니다. 이 말은 자기 아버지께 모든 것을 기대하는 자녀들의 아름다운 신뢰를 나타냅니다. 우리가 청을 드리는 하느님 아버지는 “악인에게서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시는”(마태 5,45) 분이십니다. 이 아버지는 나만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 곧 모든 이의 아버지입니다. 우리가 이 기도를 바칠 때 아버지는 모든 이의 아버지이심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아버지의 자녀들인 모든 사람, 특별히 결핍과 고통을 겪는 이들과 이루는 연대감에서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우리 주변에는 양식이 없어서 굶주리는 이들이 엄연히 있습니다. 이 사실은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하는 우리의 청원이 지니는 또 다른 깊은 의미를 일깨워 줍니다. 곧 세상에 굶주림의 비극이 있다는 것은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드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굶주리는 이 형제들에 대한 실질적 책임을 다하라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이 책임을 다하는 일은 개인적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국제적 관계 안에서 정의를 확립함으로써 드러나야 합니다. 올바른 사회 구조를 바란다면, 올바르게 살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이 청원은 또 다른 굶주림에도 해당합니다. 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4)는 말씀처럼, 말씀에 굶주리는 이들, 영적으로 굶주리는 이들에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노력을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이 넷째 청원이 지니는 “특별한 그리스도교적 의미는 생명의 빵, 곧 신앙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하느님 말씀과 성찬으로 받아 모시는 그리스도의 몸과 관련됩니다(2835항).

“성체는 우리의 일용할 양식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이 양식의 고유한 효험은 일치를 이루게 하는 힘입니다”(성 아우구스티노).

“그리스도께서는…날마다 신자들에게 제공되는 천상 양식인 빵이십니다”(성 베드로 크리솔로고).

정리=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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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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