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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기 벅찬 고통… 하느님의 심판인가 사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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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하느님은

리처드 레너드 글 / 맹영선 옮김 / 성바오로 / 1만 2000원

“내게 이런 고통을 주시다니…. 하느님이 계신다면 이럴 수 없어.”

우리는 수시로 절망한다. 그러면서 고통의 이유를 하느님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쉽게 단정짓기도 한다. 질병의 고통, 사고의 아픔, 극한의 슬픔 등 긍정할 수 없는 요소들 사이에서 우리 하느님은 쉽게 부정된다.

이야기는 예수회 신부인 저자 리처드 레너드의 누이동생의 갑작스러운 사고에서부터 시작한다. 사람들은 저자를 달랜답시고 그에게 “동생이 지은 죄를 지상에서 벌을 받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동생의 아픔이 마치 하느님의 저주에서 비롯된 것으로 간주해버린다.

그러나 저자는 확신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며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분이 아닌, 아픈 이들과 함께하는 존재임을. 그러므로 저자는 “하느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세요?” 하고 묻기보다, 그리고 사랑이신 하느님과 잔인한 하느님 사이에서 ‘선택질’을 하기보다, 절대 우리를 죽이지 않으시는 하느님을 더욱 믿도록 일러준다.

저자의 확신은 성경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구약의 하느님이 사람들의 잘잘못을 심판하고 무서운 재앙을 불러왔다 할지라도 이는 곧 구원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 노래이며 우리가 잘살기를 원하는 하느님의 바람이라는 것. 신약의 주님인 예수님은 자신을 비난하는 율법학자들과 열혈당원들에게 단 한 번도 복수심을 갖거나 곤경에 빠뜨리지 않았다. 대신 더 어렵고 아픈 이들과 함께했으며 누구도 단죄하지 않았다.

저자는 하느님은 인간의 삶을 게임판 위에 놓고 좌지우지하는 ‘딜러(dealer)’의 자리가 아닌, 우리와 같은 자리에서 함께하고 계신다고 일깨운다. 어떠한 곤경과 고통 속에 있다 할지라도 하느님은 우리에게 고통으로 일깨움을 주지 않는다. 도리어 나의 삶을 선하게 이끄는 나를 위한 ‘딜러’라는 것이다.

저자는 “하느님은 내가 믿음과 희망, 사랑이라는 향주삼덕을 살아가길 원하신다” “하느님은 우리가 모두 사랑ㆍ기쁨ㆍ평화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길 바라신다”며 끊임없이 빛으로 존재하는 하느님을 전한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인생의 큰 그림을 그려보자. 저자는 내가 해야 할 일, 마음가짐 등을 하느님과 함께 연구해보길 권한다. 그러면 세상을 향한 나의 할 일이 저절로 정립될 것이다. 내 인생 그림에 재앙을 주시려는 폭군의 하느님이 과연 존재할까. 다시 생각해보자.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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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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