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은총 속에 부부로 새 출발을 하는 신랑과 신부. 혼인미사가 거행되는 이 경당에는 신랑과 신부를 응원하는 박수소리로 가득하다. 15명 남짓한 하객들은 신랑과 신부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치며 진심어린 축하를 건넨다. 24개의 좌석에 독서대, 작은 제대가 전부인 99㎡규모의 경당은 신랑, 신부 가까이에서 격려를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혼잡한 탓에 신랑, 신부에게 인사조차 하기 어려운 여느 결혼식과 달리 차분한 분위기에서 혼인미사에 집중할 수 있다.

8월 31일 혼인미사가 봉헌된 이 곳은 서울 도림동성당 옆에 지어진 ‘이현종 신부·서봉구 형제 순교기념관’(이하 순교기념관)이다. 순교기념관은 도림동본당에서 사목하다 1950년 북한군에 의해 피살돼 순교한 이현종 신부와 그와 함께 피살된 신자 서봉구(마리노)의 고귀한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지난해 8월 건립됐다. 이현종 신부의 유품과 작은 경당으로 꾸며져 있는 순교기념관에는 두 순교자의 신앙과 삶을 본받기 위한 신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본당은 8월부터 순교기념관을 소규모 혼인미사 장소로 신자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640석 규모의 대성전에서도 혼인미사가 봉헌되지만, 작으면서도 특별한 결혼식을 올리고 싶은 예비부부들에게 순교기념관도 혼인미사 장소로 인기가 높다.


이날 양가 부모님과 친척과 친구, 미사를 돕기 위한 봉사자까지 20여 명의 인원으로 이미 꽉 찬 경당은 신랑, 신부에게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다. 또한 순백으로 꾸며진 순교기념관 내부는 스테인드글라스 너머로 비친 형형색색의 빛이 경당 곳곳에 번지며 두 사람이 부부로 맺어진 특별한 순간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이날 순교기념관에서 결혼식을 올린 신부 노정인(베로니카·30·도림동본당)씨는 “순교기념관을 처음 보고 너무 예뻐서 꼭 여기서 결혼을 하고 싶었다”며 “혼인미사를 하는 내내 하객들이 저희에게 집중하는 게 느껴져서 너무 감사했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순교기념관을 신자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은 도림동본당 주임 최희수 신부에게서 나왔다. 가족의 축복을 비는 미사를 함께하며 하느님의 은총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최 신부는 “가족이 모두 모여 밥 한번 먹기도 힘든 요즘, 가족끼리 감사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공간으로 순교기념관 경당을 활용하면 좋을 것 같았다”며 “예쁘게 잘 가꿔진 경당에서 가족의 사랑을 확인하며 신앙의 의미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혼인미사 뿐 아니라 은혼식, 금혼식 등 다양한 가족모임에 활용할 수 있도록 순교기념관을 개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