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교구/주교회의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대구 최영수 대주교 선종

4일 성 김대건 기념관서 장례미사 … 정 추기경 등 애도 메시지. “마지막 순간까지 교구 위해 기도 바쳐”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전 대구대교구장 이문희 대주교(왼쪽 두번째), 교구장 직무대행 조환길 주교(맨 오른쪽)와 사제들이 선종 직후인 8월 31일 오전 10시 최영수 대주교 유해가 안치된 주교좌 계산성당에서 사망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한국교회 또 한 명의 큰 목자가 스러졌다.

대구대교구 제9대 교구장 최영수(요한) 대주교가 교구설정 100주년(2011년)을 2년여 앞두고 8월 31일 오전 6시20분 대구가톨릭대학병원에서 지병으로 선종했다. 향년 67세. 대구대교구 사무처장 하성호 신부는 “최 대주교는 마지막 순간까지 교구를 위해 기도했다”고 말했다.

최 대주교는 ‘그리스도와 함께’(교구장 착좌 사목표어) 평생을 살아온 참 목자였다. 1995년부터 2년간 가톨릭신문사 사장을 역임하는 등 가톨릭 언론 발전을 위해 헌신한 최 대주교는 대구시립희망원 원장, 대구가톨릭사회복지회 이사장직을 맡으며 지역 사회복지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특히 이번 최 대주교의 선종은 교구 시노드와 100주년 기념 성전 건립, 대구대교구 100사 편찬 등 굵직한 사목 현안을 앞둔 시점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정진석 추기경은 선종 애도 메시지를 통해 “최 대주교님은 병마와 싸우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에게 맡겨진 목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셨다”며 “대주교님이 하느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고 말했다.

대구대교구장 직무대행 조환길 주교도 추모 메시지에서 “최 대주교님은 가톨릭교회뿐 아니라 지역의 평화와 화합을 위해서도 애쓰셨다”며 “대주교님께서 바라신 대로 우리 교구가 더욱 발전하고 사회에 참 평화가 넘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말했다.

1942년 경북 하양에서 출생한 최 대주교는 1970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대구대교구 신암, 대봉, 영천 보좌를 거쳐 1976년부터 3년간 이탈리아로 포콜라레 사제학교 연수를 다녀왔다. 이후 교구 관리국장, 사무처장 등을 역임한 최 대주교는 1995년부터 1997년까지 가톨릭신문사 사장, 1996년부터 2001년까지 대구평화방송 사장을 지냈다. 2001년 2월 주교 서품을 받았으며, 2006년 2월 대구대교구 부교구장 대주교로 임명되고, 2007년 4월 교구장에 착좌했다.

고인의 장례미사는 9월 4일 오전 10시 대구가톨릭대학교 남산동캠퍼스 성 김대건기념관에서 주교단과 교구 사제단 공동 집전으로 봉헌된다. 유해는 남산동 교구청내 교구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며, 삼우미사는 9월 7일 오전 11시에 봉헌된다.

※ 대구대교구 장의위원회 053-250-3051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9-09-06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6

1요한 3장 10절
의로운 일을 실천하지 않는 자는 모두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도 그렇습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