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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범식 신부의 쉽게 풀어쓰는 기도이야기] 은총에 이끌린 삶 1

찬미 예수님.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신앙인의 삶에서 드러나는 능동적인 수동성, 선택받기를 선택하는 삶을 생각하다 보면 우리 삶의 근본적인 주도권은 하느님께서 쥐고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맞는 생각이지요. 우리가 하루하루를 열심히, 애를 써서 살아가고 있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을 이뤄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저자도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께서 집을 지어 주지 않으시면 그 짓는 이들의 수고가 헛되리라. 주님께서 성읍을 지켜 주지 않으시면 그 지키는 이의 파수가 헛되리라. 일찍 일어남도 늦게 자리에 듦도 고난의 빵을 먹음도 너희에게 헛되리라.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이에게는 잘 때에 그만큼을 주신다."(시편 127,1-2)

이처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것을 우리는 '은총'이라고 부릅니다. 은총 역시도 하나의 신비여서 우리 인간의 지성으로 온전히 다 파악할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은총을 "하느님의 자녀 곧 양자가 되고 신성과 영원한 생명을 나누어 받는 사람이 되라는 하느님의 부름에 응답하도록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호의이며 거저 주시는 도움"(「가톨릭교회교리서」 1996항)으로 이해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느님의 호의와 도움, 은총으로 살아가고 있지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청하고, 또 주시는 은총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느님의 은총을 어떻게 체험하고 계십니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호의와 도움을 베풀어 주신다고 할 때, 하느님께서는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은총을 주실까요? 우리 자신의 의도나 계획, 처지와는 상관없이 무작정 당신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주시는 것일까요?

예를 들어, 길을 건너려고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모습을 생각해 봅시다. 신호등이 붉은색에서 파란색으로 바뀐 것을 보고 이제 막 길을 건너려고 합니다. 그런데 신호등이 바뀐 것을 미처 보지 못한 자동차 한 대가 급하게 횡단보도로 질주해 들어오죠. 그리고 저는 그 차를 보지 못한 채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로 들어섭니다. 여차하면 차에 치여 크게 다칠 만한 위험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느님께서 저의 온 몸을 마비시켜서 제가 꼼짝달싹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있게 만드십니다. 그대로 두면 차에 치일 것은 뻔한 일이니까요.

자, 이렇게 해서 제가 교통사고를 당할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면, 이것이 하느님의 은총일까요? 하느님께서 당신의 은총으로 저를 보호해 주셨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이런 일이 정말로 일어난다면 그것은 은총이라기보다는 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직접 우리 인간의 삶에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개입하시는 사건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도 하느님의 이러한 초자연적 개입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도 병을 낫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빌기도 하고 또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회 안팎에서 일어나는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신중하게 기적으로 인정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렇게 예외적인 방법이 은총이라기보다는 기적이라고 한다면, 일상적인 하느님의 은총은 어떻게 우리의 삶 안에 주어지고 작용하는 것일까요? 우리 자신의 삶을 '은총에 이끌린 삶'이라고 고백한다면, 하느님의 은총은 어떻게 우리의 삶을 이끌어주시는 것일까요?

우리 삶에 주어지는 하느님 은총의 작용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신학의 명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은총은 본성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완성시킨다"(「신학대전」, 제1부, 제1문, 8, 2)라고 가르치는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명제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은총은 본성을 전제하며 완성시킨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은총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초자연적인 선물을 의미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내용과 같죠. 그리고 본성은 모든 인간이 지닌 생물학적 특성뿐만 아니라 동물과 다르게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여러 특성들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인간의 지적 능력, 정서, 의지, 양심, 판단, 숙고된 행동, 영적인 감수성 등이 있지요. 물론 이런 여러 특성들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지적으로 더 뛰어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평범할 수 있죠. 정서적으로 풍부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메마른 사람도 있습니다. 의지가 강한 사람도 있고 약한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그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더라도 적어도 지성과 정서, 의지라는 측면은 모든 사람에게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것들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말처럼 하느님의 은총이 인간의 본성을 파괴하지 않고 전제하며, 오히려 완성시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쉽게 말씀드리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실 때 인간의 본성적인 능력들을 무시하고 당신 마음대로 주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능력이나 성격을 당신 마음대로 바꾸거나 통제하면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내일 시험을 앞두고 있는 학생의 지적 능력을 갑자기 올려준다거나, 길에 떨어져 있는 돈을 발견한 사람의 양심을 순식간에 키워주는 방식으로 일하시지 않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원고 마감일이 다 돼 다급해진 상황에서 아무리 하느님께 기도를 하고 은총을 청한다고 해도, 어떤 내용을 써야할지를 제 머릿속에 일러주시고 저는 그 내용을 그대로 받아 적으면 되는 방식으로 은총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은총이 본성을 전제한다는 말은, 하느님께서 당신 은총으로 우리 삶을 이끌어 주실 때 우리 각자의 인간적 본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협력을 요구하신다는 뜻입니다. 당신 마음대로, 우리의 자유로운 의사와는 상관없이 은총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은총을 잘 받을 수 있게끔 그리고 그 은총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게끔 우리 각자도 자기 본성의 능력으로 협력할 것을 필요로 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전지전능한 분이신데 왜 우리 인간 본성의 협력을 필요로 하실까요?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당신 마음대로 우리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꼭두각시와 같은 존재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왜 그렇게 창조하셨을까요?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의 속성 자체가 상대방의 자유를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은총의 방식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민범식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2003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로마 그레고리오대학에서 영성신학 박사와 심리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기사원문 보기]
[가톨릭신문  2018.04.10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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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말씀
<엘리야가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0-13 산에서 내려올 때에 10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 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11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13 그제야 제자들은 그것이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성인
성녀  마리아 크로치피사 디 로사(Mary Crocifissa di Rosa)
 막시미노(Maximinus)
 바오로(Paul)
 발레리아노(Valerian)
성녀  비르지니아 첸투리오네 브라첼리(Virginia Centurione Bracelli)
 이레네오(Irenae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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