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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신앙살이] (453) 추억을 만드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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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후배 신부님이 전화를 걸어와, 자신이 보좌였을 때 주임인 선배 신부님을 같이 만나러 가자고 했습니다. 당시 바쁜 일정을 지내던 나는 다음에 가자고 제안했더니, 후배 신부님은 지금 당장 시간을 좀 내달라고 부탁 같은 ‘협박’을 했습니다. 할 수 없이 나는 선배 신부님에게 지금 시간을 좀 내 달라는 부탁을 드렸고, 그렇게 우리는 선배 신부님을 찾아갔습니다.

우리를 반겨 주시는 선배 신부님에게 근황을 물었더니, 요즘은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서 2시간 내지 2시간 30분 정도를 근처 시민 공원에 가서 걷고 있으며, 본당 사목을 하면서 틈틈이 꾸준한 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제관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주방 봉사하시는 자매님에게는 ‘먼저 퇴근하셔도 된다’고 말한 후, 우리 세 사람은 여유 있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밥 한 톨에 이야기 하나, 밥 두 톨에 이야기 둘…. 이렇게 깨가 쏟아지듯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러다가 선배 신부님은 내게 묻기를,

“강 신부, 내가 사제 생활 30년 이상을 한 후에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 하나 있어. ‘사제가 뭐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물음에 내 스스로의 답변을 찾았다고나 할까.”

“에이, 신부님. 그 물음은 서품을 받기 전에 누구나 다 하는 고민이잖아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착한 목자로 살아가는 것’, 그게 보편적 답이잖아요.”

“그래, 맞아. 그건 모두가 다 아는 답변이지. 그런데 나는 내 안에서 또 하나의 답을 찾은 거지.”

이때 후배 신부님도 나서서,

“그러면 사제의 신원에 대해, 신부님이 깨달은 답변은 어떤 건가요?”

“음, 사제란, 아니 나에게 사제란 ‘신자들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나는 조금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사제가 추억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라고요? 그러면 본당 신부님은 신자들과 추억을 만들기를 하려고 주일마다, 행사를 많이 하면 되는 건가요?”

“이런 답답한 강 신부. 진정 사제가 신자들을 위해 만들어 주는 추억은 행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냐. 자, 봐. 예전에 내가 본당 주임할 때, (후배 신부를 가리키며) 보좌로 함께 잘 살았잖아. 그때 우리는 신자들을 정말 많이 사랑하면서 살았어. 그리고 신자들도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었고.” 후배 신부님은 겸연쩍어 하면서 머리를 긁으며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신부님은,

“그러다 보니 당시 본당 행사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우리가 매일 드리는 미사 때에도 신자들이 행복한 얼굴로 성당에 왔어. 그 신자 분들은 우리가 그 본당을 떠났을 때에도, 지금 본당 신부님과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어. 신부들이 만들어 주는 추억은 그냥 과거에 한때, 단지 좋았던 기억을 가지는 것이 아냐. 하느님 안에서 진정한 추억이란, 사제를 만나는 신자들이 결국은 하느님의 사랑을 배우며, ‘나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삶 안에서 기쁨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바로 신자들에게 참된 추억을 소중히 만들어 주는 신부들의 역할이라는 것이지.”

좋은 사제와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는 좋은 신자들의 삶은 ‘아, 그때가 좋았지!’하며, 단지 과거의 추억 속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좋은 사제가 좋은 신자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준다는 것은 결국은 신자들이 신앙을 통해서 체험한 기쁨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간다는 뜻 같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신자 분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신앙의 추억은 ‘예전에 그 신부님이 계실 때가 좋았는데’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좋은 사제를 선물로 주셨듯이 지금은 내가 좋은 신자가 되기를 결심하는 힘이 됩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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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8-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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