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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신앙살이] (460) 생각을 선택하기!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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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후배 신부님과 깊은 산속에 위치한 어느 관상수녀회 피정의 집에서 6박7일 동안 연중 피정을 한 적이 있습니다. 청정 자연과 주변 풍경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그곳에서는 하느님 안에서 은거의 삶, 침묵의 기도, 단순한 노동과 검소한 삶을 일상 안에서 살아가시는 수녀님들이 계셨습니다. 수녀님들의 모습, 그저 보고만 있어도 피정이 되었습니다.

피정 기간 동안 후배 신부님은 식사를 마치면 산책을 했고, 가벼운 등산도 할 겸 주변의 산길을 여러 군데 걸었던 모양입니다. 나는 식사를 마친 후에는 피정의 집 마당을 가볍게 걷거나 툇마루에 앉아서 가을 하늘과 단풍을 바라보며, 가을의 정취를 만끽했습니다. 그렇게 피정 시간을 보냈고, 피정 다 끝나기 전날 나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 혼자 마당을 걷고 있는데, 후배 신부님이 조용히 오더니, 내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수사님, 오늘 이곳에서 피정하는 마지막 날인데, 우리 함께 산책하면 어때요? 사실 제가 분위기 좋은 카페를 하나 발견했어요. 거기에 가서 차 한 잔 마시고 와요.”

덩치는 고릴라 같은데, 마음은 천사 같은 후배 신부님의 선한 눈을 보니, 걷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나는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신발을 갈아 신고 우리는 피정의 집 대문을 나서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조용한 길을 걸었습니다. 그렇게 5분, 10분, 20분…. 계속 걷는데 카페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후배 신부님은 천천히 깊은 호흡도 하고 두 팔을 벌려서 하늘을 보기도 하고. 그러더니 내게,

“수사님, 언제 우리게 이렇게 두 사람이 따로 나와서 연중 피정을 하겠어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텐데, 이렇게 함께 걸으니 너무 좋아요. 수녀님들도 잘해 주시고.”

나는 후배 신부님의 말을 들으며 맞장구는 쳤지만, 마음속으로는 빨리 카페가 나오기를 바랐고, 차를 후다닥 마신 후 피정의 집으로 다시 돌아올 것을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가지다보니 그날따라 발목과 무릎은 어찌나 아프던지! 그렇게 1시간 정도를 걸었더니 왼쪽에는 큰 저수지가 보였고, 정면에는 삼거리로 이어져 큰 도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근처에 카페는 없고 낚시 가게를 하는 슈퍼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슈퍼 쪽으로 걸어가는 후배 신부님을 보면서 ‘혹시나… 설마…!’ 했는데. 예, 설마가 맞았습니다. 후배 신부님은 슈퍼에서 캔 커피 두 개를 사가지고 나오더니, 저수지가 보이는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가 의자에 앉으라며 말하기를,

“여기, 너무 좋지 않아요, 이 자연 그 자체의 아름다운 카페가!”

허허, 너무나 기가 막혔지만 피정의 은총 안에서 ‘너그러움과 관대함의 은사’를 간절히 청했던 터라! 나는 후배 신부님과 쓰디쓴 대화를 즐겁게 나누며, 쓰디쓴 커피를 씁쓸하게 마셨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또 1시간을 걸어야 하나 걱정했는데, 후배 신부님은 함께 걸으며 듣기 좋은 음악들을 들려주었고, 자신이 DJ가 되어 음악 설명도 해주었습니다. 함께 걸으며 자연의 소리와 음악 소리가 한데 어우러진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걷다가 피정의 집에 무사히 도착했고, 가볍게 씻은 후 그날 저녁, 전체 피정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런 다음 산속 피정의 마지막 밤, 조용히 눈을 감고 잠을 청하며 누웠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잠은 오지 않았습니다. 오후에 너무 많이 걸어서 온몸이 피곤하고 힘든데! 시간은 흘러 자정이 넘었습니다. 그러면서 주변에 아무도 없고, 나 혼자 이렇게 산속에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방안은 으스스하고, 음산하며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와 함께…!

(다음 호에 계속)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8-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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