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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신앙살이] (464) 마음 아픈… 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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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잘 알고 지내는 어느 수도회 수사님의 어릴 적 이야기입니다. 그 수사님은 5살 때인가, 여름에 가족들과 함께 대천 해수욕장에 간 적이 있었답니다. 5살 어린 꼬마에게 푸른 바다와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는 신기함과 설렘의 대상이었지요. 그리고 여름의 무더위에 해수욕장으로 피서를 온 많은 사람들 틈에서 어린 시절, 수사님은 가족들과 야외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답니다.

그렇게 해수욕장에서 재미있게 놀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아빠와 엄마 그리고 누나들이 안 보였답니다. 뭘 했는지는 기억에 안 나지만, 주변을 둘러보는데 가족들이 한 사람도 안 보였답니다. 수사님은 말하기를,

“강 신부님,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아이의 자그마한 키로 해수욕장에서 주변 사람들을 돌아봤으니 당연히 아무도 안 보였던 것 같아요. 그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 가족들은 나를 골탕 먹이려고 잠시 숨어 있었고, 내가 어디로 가는지를 지켜보고 있었대요.”

“수사님 가족들이 장난을 좋아하셨네요, 하하하.”

“아무튼 나는 우리 가족이 없어졌다는 생각에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겁이 덜컥 났던 거예요. 가족을 잃어버리면 잃어버린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야 할 텐데, 나는 본능적으로 가족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부터 했어요. 그래서 눈물을 흘리며 아빠, 엄마, 누나를 찾는데 그때 어느 마음 착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나를 보더니 손을 잡는 거예요.”

“혹시, 수사님을 유괴하려는?”

“아니, 그게 아니라 그 아주머니가 나에게 말하기를, ‘에구, 엄마랑 아빠 잃어버렸어? 그래, 여기 파라솔에서 우리랑 같이 있자. 그러면 엄마랑 아빠가 널 찾으러 올 거야.’ 그렇게 말하기에, 나는 착하게 생긴 아주머니네 파라솔에 앉아 엄마, 아빠를 기다렸어요. 그리고 그 아주머니가 수박을 주는데 눈물을 흘리면서도 먹어지더라고요, 하하하. 수박을 먹고 난 후, 뒤를 돌아보니, 그 파라솔에는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여자 아이 세 명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여자 아이들도 울고 있는 나를 무척 불쌍하게 쳐다보는데…. 그 마음 착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자신의 딸들에게 하는 말이 ‘얘들아, 너희들도 엄마 말 안 들으면 저 애처럼 된다. 알겠지! 그러니 요기, 가까이서 물놀이를 해야 해.’ 정말이지, 듣지 말아야 했던 그 말을 그만 듣고 말았던 거예요. 그 순간, ‘아, 지금 내가 엄마랑 아빠 말을 안 들어서 이렇게 된 것이라는 말인가!’ 그 어린 마음에 그 아주머니의 이야기가 지금도 생생하게 내 귀에 울리는 거 있죠?”

“푸하하하. 정말… 짠하다, 내 마음이…. 웃겨서 말이 안 나오네. 푸하하하.”

“아이, 좀 웃지 마요. 나는 심각한데. 암튼 그 아주머니의 말에 더 서럽게 울고 있는데, 아빠와 엄마가 웃으며 나를 찾으러 온 거 있죠! 누나들도 웃고 있고. 그리고 아빠랑 엄마는 그 아주머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우리 가족은 서로 손을 잡고 모래사장을 걸었죠. 바다를 보며 우리가 사용하는 파라솔을 향해 걷는데, 그날 아빠랑 엄마, 그리고 맨날 싸웠던 우리 누나들이 얼마나 좋아 보이던지! 암튼 ‘얘들아, 너희들도 엄마 말 안 들으면 저 애처럼 된다’는 그 착한지, 어쩐지 모르는 아주머니의 말이 지금도 귓가에 울리는 듯해요.”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와 길을 잃은 꼬마! 수박도 주고 부모도 찾게 해 주고. 좋은 배려를 하신 분. 그런데 배려의 시간이 채 잘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딸들에게 꼬마의 일을 통해 교훈을 주려고 한 것이 우습기도 하고…. 약간은! 본의 아니게 하신 아주머니의 말, 하지만 그 말을 듣게 된 꼬마는 지금도 아주머니의 말이 풀리지 않는 한이 되어 있네요. 푸하하하. 문득 ‘좋은 선을 베푸는 것은 상대방을 끝까지 편안하게 이끌어 주는 것’임을 다시금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8-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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