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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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자비의 손길로 인간다운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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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부활 제2주일 곧 ‘하느님의 자비주일’입니다. 주님 부활의 기쁨과 희망이 형제자매와 가난한 이웃들에게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부활은 우리 신앙의 바탕이며 핵심입니다. 오늘 전례를 통해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자비를 마음에 깊이 새깁니다.

2000년(대희년) 부활 제2주일에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하느님 자비의 사도’라 불리던 폴란드 출신의 파우스티나(Maria Faustina Kowalska, 1905~1938) 수녀를 시성하시면서 ‘하느님의 자비 주일’을 제정하셨습니다. 성녀께서는 초등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십대부터 가정부 생활을 하다가, 20세에 ‘자비의 성모 수녀회’에 입회하여, 33세에 생을 마칠 때까지 주님의 자비를 깊이 묵상하고 ‘자비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증언한 분입니다.

수녀의 일기 「내 영혼에 하느님의 자비」(Divine Mercy in My Soul)는 주님의 자비를 찬미하고 행동으로 옮긴 것이 핵심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본받아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는 성경의 말씀(탈출 34,6; 루카 6,36)도 있지만, “인류가 하느님의 자비를 온전히 신뢰하고 돌아서지 않는다면, 결코 평화를 누리지 못할 것”(일기 132쪽)이라는 성녀의 메시지는 하느님 자비의 손길을 증언한 표지입니다.

제1독서의 말씀은 초기 예루살렘공동체의 모범적인 생활의 모습입니다. 성경이나 옛 문헌에 드러난 그들의 모습은 친교로 일치를 이룬 사랑의 교회입니다. 그들은 한마음으로 성찬례에 참가하여 빵을 나누고 기도에 전념했으며, 나눔을 실천했습니다. 열두 제자들의 놀라운 기적과 예언의 말씀, 특히 병자를 치유하는 권능이 드러나자 교세는 더욱 확대되었습니다.

제2독서는 요한 사도가 제2의 네로라는 도미시아노의 박해 때 에페소서 남쪽 에게(Aegean) 해에 있는 파트모스(Patmos) 섬에 유배되어 지내는 동안 ‘알파(시작)요 오메가(마침)’이신 하느님께서 직접 계시(묵시 1,8)하신 내용을 기록한 묵시록의 시작입니다. 신의 출현을 알리는 나팔소리(탈출 19,16)가 울리는 가운데 요한 사도가 본 환시를 기록하여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페소서, 스미르나 등. 묵시 1,11)에 전합니다.

영광 속에 등장한 왕이요 대사제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이 여러 비유의 상징물(황금 등잔대, 긴 옷, 금띠)로 표현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실 때 당신을 친히 ‘사람의 아들’로 호칭하셨습니다.(마르 8,31; 9,31; 10,33)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며, 주님께서 처음이요 마지막이며 영원토록 살아계신 분이시며 죽음과 저승의 열쇠를 쥐고 계신 분(요한 1,17-18)임을 밝힙니다.


오늘 복음(요한 20,19-31)에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두 번(부활주일 저녁과 부활 제2주일) 나타나십니다. 그들이 문을 모두 잠가놓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는 인사말을 하신 후, 못 자국이 난 양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선교의 사명을 부여하시고, “성령을 받아라” 하시며 성령의 선물을 주십니다.

의심 많은 사도인 토마스 사도는 히브리어로 ‘쌍둥이’라 불립니다. 다른 제자들이 토마스에게 주님을 뵈었다고 하자, 그는 손에 난 못 자국과 옆구리에 자기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를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여드레 뒤 부활 제2주일에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을 때 토마스에게 손을 넣어보라고 하시자, 그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새롭게 초대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죄의 용서를 위한 성령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인간적으로 용서는 손바닥을 뒤집듯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하시며 용서로 화해를 촉구하십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용서는 선택이 아니라 공동체의 평화를 위한 책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는 인사와 함께 성령의 선물을 주십니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성자이심을 우리 모두가 믿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새 생명을 얻게 하려는 복음서를 쓴 목적을 밝힙니다.(요한 20,31)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를 굳게 믿고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며 주님의 자비로운 모습을 우리의 가정과 사회에서 닮아가도록 깨달음을 줍니다.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폐막 50주년(2015년)을 기념하여 자비의 특별희년을 지낸 바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인식하고 이를 실천하는 은총의 기회였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자비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참 아름다운 신앙의 진리이기에 자비의 손길은 이어가야 합니다.

지금도 세상에는 야만적 폭력이 난무하고, 빈부격차가 더욱 심해지며, 눈을 뜨고 보기 힘든 고통과 인간존엄을 박탈당한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스도인 모두가 앞장서 하느님의 자비로운 손길이 되어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 때, 인간다운 세상을 가꾸는 사랑의 불쏘시개가 되고, 사랑의 열매 또한 풍성해지리라 믿습니다. 가장 급선무는 새 생명과 사랑을 꽃피우는 용서입니다.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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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4-24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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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서 4장 8절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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