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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교율 50% 안팎… 회심하고 순교하기도

한국순교복자수도회, 박해시기 ‘배교ㆍ유배ㆍ증언’ 주제 학술 심포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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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순교복자수도회가 18일 서울 성북동 본원에서 ‘배교ㆍ유배ㆍ증언’을 주제로 개최한 학술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발표자의 발제를 듣고 있다.



한국천주교회사는 주로 순교사 중심으로 쓰였기에 상대적으로 배교자와 회심자에 관한 연구가 많지 않았다.

배교는 박해시기 신자들에게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고, 오늘날 개인 사정으로 하느님을 멀리하고 이웃 사랑에 눈감는 행위도 실상 배교라 할 수 있다.

한국순교복자수도회는 18일 서울 성북동 본원에서 ‘배교ㆍ유배ㆍ증언’을 주제로 학술 심포지엄을 열고, 박해시기 배교자와 회심자를 통해 순교 의미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심포지엄 발표자들은 박해시기를 말할 때, 신앙과 배교의 관점, 순교자와 밀고자에 대한 판단 등 선과 악의 이분법적 역사 인식을 가지고 이해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박해시기와 그 시기를 살았던 신앙 선조들에 대한 총괄적인 이해를 통해 통합적인 안목에서 교회사를 바라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천주교회사의 기록은 순교보다 배교가 많았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김대건 성인의 아버지인 성 김제준(이냐시오)과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인 복자 이성례(마리아), 최형(베드로), 홍봉주(토마스) 등 많은 이들이 배교 후 회심하고 순교로 신앙을 증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학징의」와 「포도청등록」 등 관변 자료를 분석하면 체포된 신자의 배교율은 1801년 신유박해 62, 1839년 기해박해 48, 1866년 병인박해 54에 이른다. 방상근(내포교회사연구소) 박사는 이에 관해 “관변 기록과 교회 자료는 내용의 중심이 다르기에 배교율 분석 결과는 한계성을 띨 수밖에 없다”며 “배교와 회심을 일정한 틀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배교했음에도 불구하고 풀려나지 않고 유배된 이들이 많았다. 특히 신유박해 당시 400명이 유배형을 받았다. 심재우(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서로 간의 교류를 막기 위해 철저하게 8도에 분산 수용했다”며 “유항검의 딸 유섬이, 황사영의 부인 정난주 등 가족으로 연좌된 유배인들은 사면되지 못하고 대부분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밝혔다.

체포된 교우 중에는 살기 위해 배교를 했을 뿐 아니라 밀고자가 되어 포졸과 함께 다니며 천주교인들을 색출한 이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밀고자로는 신유박해 때 주문모 신부를 밀고한 한영익, 기해박해 때 앵베르 주교를 밀고한 배교자 김여삼, 병인박해 때 베르뇌 주교와 선교사를 밀고한 이선이 등이 있다. 이들은 선교사와 평신도 지도자들을 밀고해 한국 교회를 와해시킨 장본인들이다.

강석진(순교성지 새남터본당) 신부는 “박해시기 신자들은 밀고자들을 유다스라 불렀다”면서 “종교 자유 후 밀고자가 회심을 통해 시복 재판 증언자로 나오기도 했지만, 그들로 인해 가족을 잃은 신자들은 그 밀고자를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할 상황에서 많은 갈등을 겪었다”고 안타까워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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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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