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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아는 만큼 보인다] 29. 인간 (「가톨릭 교회 교리서」 355~361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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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수도사들을 가르치던 수련자 수사님이 유난히 한 제자만 특별히 사랑하였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그것에 대해 질투를 하였습니다. 수사님은 어느 날 제자들에게 참새를 한 마리씩 주면서 “아무도 없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이 참새를 죽여와라!”라는 숙제를 주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자신의 참새를 가지고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러 자신들이 죽인 참새를 가지고 스승에게 왔습니다. 그런데 해가 져도 한 제자만은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밤이 되었는데 갑자기 산속에서 무엇인가 움직이더니 그 제자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손에는 참새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제자들은 참새를 죽이지 못한 제자를 비웃었습니다.

스승은 그 제자에게 “왜 죽이지 못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제자는 “처음에는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 산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산속에는 저를 바라보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었습니다. 동물들과 새들이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두워지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들어 밤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밤이 되어도 저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다른 제자들은 스승이 왜 그 제자만 특별히 사랑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성은 하느님의 존재를 얼마나 가까이 느끼며 살아가느냐에 달려있습니다. 하느님이 계심을 느끼면 이 세상 어떤 것도 소홀이 대할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물건을 자녀가 어떻게 함부로 다룰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세상 피조물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안다면 환경오염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하느님의 피조물 중의 으뜸인 인간의 인권이 훼손되는 일은 더욱 없을 것입니다. 인간은 귀한 존재를 넘어 ‘존엄한 존재’입니다. 파리나 모기, 혹은 짐승들을 가리키며 ‘존엄한 존재’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오직 인간에게 ‘존엄’하다는 말을 씁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창조자’를 배재시키고는 온전히 이해될 수 없습니다. 피카소의 그림이 귀하다면 그것은 피카소가 그렸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교리서는 “인간 하나하나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녔으므로, 존엄한 인격을 지니고 있다”(357항)고 말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에 기반을 두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진을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자녀가 있다면 그 자녀는 부모 또한 함부로 대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을 무시하는 것이 하느님의 존엄을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을 지녔다는 것은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하느님과 친교를 이룰 수 있다는 데서 증명됩니다. “오직 인간만이 창조주를 알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356항) 가축이 인간을 온전히 알고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가축이 인간을 닮았다고는 하지 않습니다. 닮은 존재끼리만 통교하고 사랑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인간이 당신을 닮았다고 하시는 것은 인간이 당신과 친교를 맺을 수 있는 존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수많은 인간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신앙인이 혼자 있을 때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는 이유는 주님과 친교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을 믿도록 친히 인간과 계약을 맺으셨고, 종국에 가서는 하느님이 인간이 되시어 피를 흘리심으로써 모든 인간 각자가 하느님의 목숨보다 소중함을 알게 하셨습니다.(359항 참조) 모든 인간이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실 만큼 존귀한 존재입니다.

만약 그리스도교가 이 교리를 명심했더라면 선교라는 명목으로 남의 나라를 침범하여 문화를 파괴하고 사람을 죽이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톨릭 교리는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목숨과 같이 존귀하다고 가르칩니다. 지구상에 그리스도교 신자가 그렇게 많은데도 인간의 기본적 권리가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이 그렇게도 많이 벌어지는 이유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아직은 인간의 얼굴 안에서 하느님의 존엄성을 온전히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존엄성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들의 법의 근간을 이룹니다. 학대당하거나, 온전한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먹을 것이 없어 굶어야만 하거나, 혹은 낙태 당하는 상황을 두고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당했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하느님의 존엄성이 훼손당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하느님의 존엄성과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전삼용 신부
(수원교구 영성관 관장·수원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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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7-16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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