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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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신앙살이] (496) 말을 해야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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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동창 신부님을 만나 늦게까지 수다를 떨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날은 몇 마디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헤어질 무렵 동창 신부님은 내가 피곤해 보였는지 콜택시를 불러주었습니다. 사실 동창 신부님이 있는 사제관은 외곽에 있다 보니, 밤이 되면 택시가 잘 안 잡히는 곳입니다. 대중교통이 편안했던 나는 ‘택시 탈 돈이 없다’고 사양했지만, 동창 신부님은 ‘택시 요금은 내 카드로 자동 결제가 되니 걱정하지 말라’며 기어코 택시를 불렀습니다.

시간 맞춰 사제관 마당에 나가보니 택시가 도착했고 나는 그 택시를 탔습니다. 그런데 택시기사분은 내가 알고 있는 길이 아니라, 내비게이션이 가자는 대로만 운전을 했습니다. 가는 도중에 나는 속으로 ‘이 길이 아닌데. 왜 이리 한참을 돌아가는 거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서서히 화가 나기 시작했고, 급기야 나는 ‘지금 무척 화가 났다’는 표정으로 인상만 잔뜩 썼습니다. 이윽고 택시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예상대로 택시비는 많이 나왔습니다. 비록 동창 신부님이 택시비를 내는 것이지만….

택시에서 내리던 나는 택시요금에 질겁하는 표정을 짓고는, 택시 문을 그냥 ‘쾅~’하고 닫아 버렸습니다. 그런 다음 씩씩거리며 사제관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택시기사분에게 죄송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알고 보니 동창 신부님이 콜택시를 부를 때, 콜을 승낙한 택시기사분은 목적지까지 어떻게 가겠다는 이동경로를 동창 신부님 휴대전화로 전송했고 거기에 동창 신부님 또한 동의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택시기사분은 그 길로만 운전해서 사제관까지 왔던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택시비가 아니라, 굳이 나를 택시에 태워 보내 준 동창 신부님 마음입니다. 그 신부님은 다음 날 신자들과 교중미사를 잘 드리라고 나를 편안하게 택시에 태워 사제관까지 보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동창 신부님과 택시기사분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택시기사분은 목적지에 내린 후 보여준 나의 거친 행동을 보고 오히려 고개를 갸우뚱했을 겁니다. 호출한 손님을 잘 데려다주었더니, 문이나 ‘쾅~’ 닫고! 정말 별짓 다하는 승객을 만났다는 생각을 했겠다 싶었습니다.

후회는 왜 이렇게 지나간 다음에 하게 되는 건지!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택시기사분에게 “혹시 내가 아는 길로 가면 어떻겠느냐”고 친절하게 내 의견을 말로 설명했더라면, 택시기사분도 당연히 내가 말한 길로 가줬을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내 생각을 말하지 않고, 내가 화가 났다는 것만 상대방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을 해야 상대방이 알 것인데, 말도 안하고 있는데 지금 화가 난 감정을 주목해 주기 바란다면, 그것이야말로 ‘영적 이기주의’의 극치가 아닐까 성찰해 봅니다. 좋은 경험을 했다고 말하기에는 정말이지 부끄러움이 밀려왔습니다.

그날 동창 신부님과 마음을 열고 좋은 대화를 할 때 재미있었고 즐거웠던 순간을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그 마음처럼 ‘함께, 옆에, 곁에’ 있는 그 누군가에게 친절한 마음을 담아 대화를 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말은 안 하고, 속으로 화가 났다는 표정만 짓고 있으면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상대방이 왜 저러는지 모를 것입니다. 심지어 아무리 좋은 생각과 의견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진심을 말하지 않고 감정만 알아주기를 바란다면, 그건 어리석음의 극치일 것입니다.

지금 누군가에게 화가 좀 나려고 하시나요? 그럼 깊게 심호흡을 먼저 한 후에,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천천히 말해 보세요. 그리고 상대방이 알아듣게 말을 해보세요. 그래야 상대방이 내 마음뿐 아니라, 감정까지 알 겁니다. 정말 내가 말을 해야….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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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7-30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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