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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안에서 기쁨 되찾기] 언제 화를 내고 또 참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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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언제 화를 내고 또 참아야 할까요?

살아가다 보면 억울하지만 참아야 할 일도 있고, 화를 내고 저항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경우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때로는 어떤 경우에 참아야 하고, 어떤 경우에 화를 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식별을 위해서 기준이나 도움 말씀을 주셨으면 합니다.


【답변】 화는 자연스런 반응… 너무 억눌러도 위험할 수 있어

다음에서 기술하는 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삶의 어떤 어려운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힘과 동기를 제공해 준다. 주의 집중력을 향상시킨다. 추진력과 통제력을 갖게 된다. 두려움을 약화시키기도 한다. 죄책감이나 공포, 슬픔, 마음의 상처, 심리적인 고통감, 무기력감, 삶의 비애로부터 벗어나 삶의 어려운 일을 시도하게도 하고 위협으로부터 당당히 맞서게 해 준다. 악을 대항하게 해 준다. 내면에서 뭔가 잘못돼 가고 있다는 일종의 경고를 하는 역할을 한다. 자신이 바라는 것들을 표현해 준다. 상대방과 타협하게 도와준다. 타인의 행동을 극적으로 변화시킨다.”

이들의 공통점은 분노가 갖고 있는 긍정적인 측면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분노를 무조건 부정적인 것으로 단정지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존감에 상처를 받았거나, 개인의 욕구나 욕망이 누군가에 의해서 좌절됐거나, 자신에게 수치감이나 열등감을 느끼게 만든 대상이 있을 경우 분노감을 느끼게 됩니다.

대개 사람들이 생각하는 분노는 인간관계에서 매우 위험하고, 위협적이며, 파괴적이고, 타인에게 수용 받을 수 없는 감정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며, 그러다 보니 분노를 억지로 억압하거나 다른 대상에게 분노를 표출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 대상에는 자신이 포함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노를 적절하게 표현하면 타인과의 관계도 향상시키고 긍정적인 사회생활을 해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하며,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때 사회적 관계 안에서 오히려 오해나 왜곡 없이 타인과의 관계를 잘 맺도록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언제 화를 내야 하느냐?’와 같은 질문은, ‘언제 웃을까요?’ 또는 ‘언제 슬퍼할까요?’ 하는 질문과 같은 말입니다. 슬픔이나 우울, 기쁨 등과 같이 분노라고 하는 것도 하나의 감정이기 때문에 분노감을 언제 느낄 수 있냐를 결정할 수 있는 속성이 아닌 ‘생리적’ 반응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개인적인 분노를 자각하고 있지 못하거나, 또는 너무 오랫동안 억압하다 보면 가족을 포함해 주변의 인간관계에서나 또는 불특정 대상에게 복수하거나, 폭력 심지어 살인에 이르기까지 아주 병리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화 ‘올드보이’처럼 말입니다.

이솝우화 중에 ‘사자와 멧돼지 이야기’가 있답니다. 어느 한여름 무더운 날, 하루는 사자와 멧돼지가 물을 마시려고 작은 샘으로 동시에 내려왔답니다. 그들은 누가 먼저 마셔야 하는가를 두고 말다툼을 벌였고, 곧 싸움으로 진전이 돼 그들은 서로 극도의 분노를 내뿜으며 서로를 공격했답니다. 한참을 싸우다가 그들은 대머리독수리 몇 마리가 언덕 위 바위에 앉아서 싸우고 있는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유인즉슨, 둘 중의 하나가 죽기를 기다렸다가 그때 내려와 시체를 먹어치우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사자와 멧돼지는 즉시 정신을 차리고 다툼을 그치면서 말했답니다. “우리가 싸우다가 저 대머리독수리에게 먹히기보다 친구가 되는 편이 훨씬 좋겠네.” 참, 요즘 우리들의 삶에서 생각을 해보게 하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극도의 분노로 모든 것을 잃기보다, 관계는 유지하면서 갈등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게 서로에게 훨씬 더 이득 같아 보입니다.

혹시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느님이 알아서 하실 일을 우리가 어떻게 해 보려다가 잘 안 돼서 분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인간관계에서 폭발적이고, 파괴적인 분노는 결국 하느님에 대한 믿음의 문제가 아닌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쩌면 분노도 우리에게 중요하고, 소중한 감정 중의 하나이고, 그래서 늘 자각하고 공감해 줘야 할 대상인데, 잘못된 분노 표출을 분노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들여다보시길 바랍니다.


※ 질문 보내실 곳 :
[우편] 04919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로 37길 11, 7층
[E-mail] sangdam@catimes.kr




황미구 원장
(상담심리전문가·헬로스마일 심리상담센터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9-08-12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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