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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안에서 기쁨 되찾기] 성 문제와 관련해서 혼란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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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성 문제와 관련해서 혼란스럽습니다

대학교 2학년 여성입니다. 지금 사회는 성에 관해서 많이 자유로운데, 교회에서 권고하는 윤리적인 지침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 역시도 책임 있게 행동한다면 서로 사랑하는 사이에서 성관계가 가능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답변】 사랑으로 맺어져도, 인정받지 못하면 ‘선한 행위’일까요

정신분석학의 대가 프로이트는 인간에 대해 복잡한 에너지 체계(Psychodynamics)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정신적인 에너지와 신체 에너지가 서로 전환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 두 에너지 사이에서 교량 역할을 하면서 모든 에너지의 원천이 되는 것을 본능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본능은 유기체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며 정신적인 활동에 힘과 방향을 부여하는 생득적 요인입니다.

그 중 프로이트가 가장 강조한 삶의 본능은 성본능(sex drive or sexual instinct)이며, 여기서 나오는 에너지를 리비도(libido)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동의 인성 발달은 각 발달 단계에서 나타나는 리비도가 발출되는 정도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특히 억압된 성적인 욕망들은 사회·문화·종교적인 특성에 따라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으로 투사돼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프로이트가 활동하던 1800년대 후반과 같이 성적인 것이 금기시되는 때에는 개인의 성적인 욕망에 대해서 두려워한 나머지 성을 억압하는 경향이 있었고, 이로 인해 히스테리 같은 증상이 드러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니 성을 금기시하는 것도, 억압하는 것도 정답은 아닌 듯합니다.

매우 즉각적이고 자연발생적으로 드러나는 성적인 욕망을 억압하고 금기하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라면,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성적인 욕망을 어떤 방식으로 표출하느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특히 욕망이 지나치면 탐욕이 되는데, 탐욕은 쉽게 멈추지 않는 기관차 같아서 탐욕을 만족시킨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탐욕 중에 가장 큰 것이 성욕이기도 해서, 성적인 탐욕에 물들게 되면 점점 빠져나오지 못하고 집착하게 될 뿐입니다. 톨스토이도 “성욕과의 싸움이 가장 어려운 투쟁”이라고 했답니다.

창세기 2장 18절부터 25절 중에,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사람과 그 아내는 둘 다 알몸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즉, 남녀 간의 사랑과 결혼이란, 하느님의 축복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동시에 은총과 같이 주어진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잠언 25장 28절에 “정신에 자제력이 없는 사람은 파괴되어 성벽이 없는 성읍과 같다”고 했듯이, 우리에게 성욕은 탐욕의 대상이 아니어야 하며, 절제의 미학이 있어야 더 아름다워지는 것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한광석 신부님의 책 「가톨릭 성윤리」에서 강조하기를 “성행위는 하느님이 맺어 주신 혼인 안에서 이뤄질 때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특히 “행위자의 지향이나 행위가 이뤄지는 상황, 행위의 결과나 목적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악한 것이 있을 때는 선한 행위라고 할 수 없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즉, 서로 사랑으로 맺어진 남녀 간의 성관계라도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행위라면, 이 또한 선하다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새 생명으로 잉태된 아기는 정말 하느님의 은총으로 인한 선물인데, 주변 분들의 축복과 함께 태어나야 할 아이가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인해 근심의 대상이 되게 만든 그 행위는 선하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신분석학자 소울(Leon J. Saul)은 성적 욕망은 본래 소아기 애착의 연장선이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유년기에 충분히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지 못했다면 성인이 돼 성적인 욕망에 집착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성적인 탐닉은 모든 종류의 감정과 긴장, 성숙 그리고 미성숙의 배출구로 이용되기 때문이랍니다. 성행위가 과거 해결되지 못한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이용된다면 그건 개인의 탐욕을 해결하는 도구가 되는 것은 아닐지요? 지금부터라도 적어도 사랑과 탐욕은 구분 지어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 질문 보내실 곳 :
[우편] 04919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로 37길 11, 7층
[E-mail] sangdam@ catimes.kr




황미구 원장
(상담심리전문가·헬로스마일 심리상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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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9-30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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