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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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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아는 만큼 보인다] 45. 예수님 공생활 이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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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들의 수호성인 다미안 신부는 1873년 33세의 나이에 한센인들이 격리 수용된 미국 하와이의 몰로카이 섬에 자진해서 들어갑니다. 당시 한센인들은 몰로카이 섬에서 지옥과 같은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다미안 신부는 그곳에서 수년간 한센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을 돌봅니다. 그들이 숨을 거둘 때마다 기도해주고 묻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센인들은 다미안 신부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저 동정이나 선교 차원으로 자신들에게 다가왔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미안 신부는 물을 데우다 실수로 그 물을 발등에 쏟습니다. 물은 분명 끓고 있었는데 발은 뜨겁지 않았습니다. 감각의 상실. 이것은 분명한 한센병의 증상이었습니다. 그는 즉각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제 저도 저들과 같은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제 저들도 당신의 사랑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미사에서 “한센인 여러분!”이라고 인사하지 않고 “저와 같은 한센인 형제 여러분!”이라고 인사하였습니다. 그때부터 나환우들은 마음을 열고 신부님의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다미안 신부님은 절망에 빠진 한센인들을 당신이 믿는 하느님께로 인도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먼저 당신도 그들과 똑같은 인간임을 믿게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신부님이 전하는 복음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실 때 베드로가 예수님도 자신과 같은 인간임을 믿지 못했다면 감히 자신도 물 위를 걷겠다고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인간과 동떨어진 신적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셨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으셨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 공생활 이전의 삶은 그분께서 하느님이셨지만 또한 인간이셨음을 보여주시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시어 세상의 첫 발을 내디디신 순간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셨음을 세상에 알리시기 위해 먼저 이 사실을 가장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인 목동들에게 알리셨습니다.(525항 참조)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알려졌다면 온 세상에 알려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모든 이스라엘 남자 아기가 하는 대로 할례를 받으셨습니다.(527항 참조) 할례 때 흘리신 피는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시기 위한 노력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전통대로 성전에서 봉헌되셨습니다. 이때 시메온으로부터 세상의 “반대 받는 표적”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습니다. 공생활부터는 인간도 하느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셔야 했기 때문에 세상의 반대를 받지 않으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아버지라 불렀다고 해서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529항 참조) 이런 소명 때문에 예수님은 태어나면서부터 헤로데에게 죽음의 위협을 당하시고 이집트로 피신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파라오의 종살이로부터 구해낸 일이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질 것임을 보여주는 상징이었습니다.(530항 참조)

물론 예수님은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기 이전에도 당신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알고 계셨습니다. 당신을 찾고 있는 부모에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9)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잘 알 수 있습니다.(534항 참조) 그러나 또한 ‘사람의 아들’이 되셨음을 보여주시기 위해 부모에게 순종하시며(532항 참조) “일상적인 생활, 육체노동의 생활, 하느님의 율법에 순명하는 종교 생활”(531항 참조)을 실천하셨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나자렛에서의 감추어진 가장 일상적인 삶은 모든 인간이 손을 내밀면 닿을 수 있는 곳까지 하느님께서 가까이 와 주셨음을 보여줍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다는 것을 믿게 된다면, 우리 또한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 첫 삼십 년의 인간적인 삶은 모든 사람이 당신처럼 하느님이 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시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전삼용 신부
(수원교구 영성관 관장·수원가톨릭대 교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9-11-12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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