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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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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땅에 임한 하늘의 시간표, ‘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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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시기, 교회는 기다림을 이야기합니다. 온 마음으로 예수님을 기다리라고 권합니다. 임마누엘 하느님을 믿고 기다리는 영혼은 썩지 않는 희망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을 때, 우리의 삶이 변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삶이란 기다림의 연속이 아닐까 싶은데요. 우리 모두는 다음을 기대하고 내일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물론 그 기다림이 계획하고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오매불망 기다렸지만 내 원의를 벗어나는 경우도 허다하지요.

이런 우리의 곤혹스러운 삶을 아시는 주님이시기에 “이루어지지 않은 희망은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이루어진 소망은 생명의 나무가 된다”(잠언 13,12)라는 말씀으로 위로해 주시는 듯합니다. 이 말씀이야말로 창세 이래 끊임없이 세상을 향한 희망을 거두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고백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대림 첫 주일을 맞는 우리의 시선이 세상 때문에 마음을 앓으시는 하느님께 고정되기 원합니다. 세상에서 당신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시는 하느님의 심정을 헤아리는 시간이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하느님의 희망을 이루어드려야 하는 주인공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새겨 살아주시길 청합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표현하는 하느님의 모습은 아주 다양한데요. 이 다양함이야말로 이사야 예언자가 얼마나 하느님께 관심이 많았는지를 느끼게 합니다. 어쩌면 알량한 인간의 지식으로 지혜이신 주님을 도무지 설명할 수가 없다는 고백 같기도 하고 감히 하느님을 판단하고 대들기까지 하는 인간의 오만을 참회하라는 따끔한 지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 마음도 이사야 예언자처럼 온통 주님만을 기리며 깊이 묵상하는 때가 되면 정말 좋겠다 싶습니다. 삶에서 주님을 찾고 주님을 만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더 급한 일은 다시없으니까요.

그럼에도 많은 분들이 하느님을 묵상하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이야말로 묵상에 대한 오해인데요. 주님을 향한 묵상은 자잘한 일상 안에서 주님을 기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순간마다 하느님을 느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매 순간순간에 하느님을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영으로 예배드리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한 송이 꽃에서도 불어오는 바람에서도 그분의 위대하심을 찬미한다면 최고의 묵상입니다.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하느님의 마음을 담은, 온전한 하느님의 것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대림 첫 주일, 예수님께서는 노아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노아의 삶에 비추어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노아야말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고 또 원하면서 제대로 된 기다림을 살았던 인물인 까닭이라 싶은데요. 노아의 방주사건이야말로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주니까요.

노아가 방주를 만든 기간이 꼬박 100여 년이었습니다. 이를테면 노아가 방주를 지으려 마음먹은 그때부터 자그마치 10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노아의 방주야말로 기다림의 결실이었던 셈인데요.

그런 의미에서 대림 시기를 맞는 그리스도인의 묵상주제는 단연 믿음과 사랑과 희망의 방주를 설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주의 모습에 비추어 우리가 지어야 할 방주의 모습을 구상하는 것이 아닐까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왜 우리에게 방주가 필요한지, 과연 방주를 짓는 재료는 무엇으로 해야 할지, 누구와 함께 지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예수님께서 굳이 노아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이유를 살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도 하느님의 눈과 마음이 교회와 가정 공동체가 빚어내는 믿음과 사랑의 방주에 주목하고 계신다는 점을 알려주신 것이라 싶으니까요. 그리스도인의 가정이야말로 하늘나라의 축소판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솔직히 노아가 그 긴 세월을 바쳐 방주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노아 홀로 이루어낸 개인의 업적이 아닐 겁니다. 여러 방면으로 도움을 받았을 것이란 뜻입니다. 하느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명했던 노아일지라도 홀로 독불장군처럼 그 긴 세월을 견뎌낼 재간은 없었을 테니까요. 한마디로 노아가 영적가장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었던 것은 불평불만 없이 협조해준 가족들의 배려와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란 얘기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 역시 하느님의 뜻에 맞는 본당과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 서로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우시는 게 아닐까요? 하느님께서 명령하시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자녀를 가르치는 가장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는 고백이 아닐까요?

히브리서는 “믿음으로써,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관하여 지시를 받고 경건한 마음으로 방주를 마련하여 자기 집안을 구하였습니다”(히브 11,7)라고 기록하고 있는데요. 노아가 그 오랜 세월을 방주를 짓는 일에 몰입했던 이유가 바로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노아가 그토록 긴 세월 동안 수고를 아끼지 않고 정성을 쏟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가족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이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을 위해서 일하는 아버지, 가장을 존경하여 따르는 가족들의 마음이야말로 성가정의 모습임을 깊이 새기도록 합니다. 하느님께 순명하여 말씀대로 실천하는 바로 그 행위가 곧 가족을 위해서 귀하게 봉헌될 것이라는 진리의 귀띔이라 듣습니다. 가족 간의 사랑이야말로 진정 복된 구원의 길이라는 선포라 믿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지금 이 시대에도 노아처럼 가족을 위해서 정성 들여 믿음의 방주를 짓고 있는 가장을 찾으신다는 뜻이라 헤아립니다. 주님께서는 집안의 가장이 믿음으로 우뚝하여 그 믿음이 자자손손 대대로 이어지는 일을 무엇보다 기뻐하시니까요.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의 시나리오를 만천하에 공개하십니다. 주님의 시나리오는 내일에 대한 희망으로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에 집중하는 것임을 밝히십니다.

대림, 주님을 기다리는 땅의 인간에게 하늘의 시간표가 주어진 때입니다. 하늘의 시간표는 하느님을 향한 믿음으로 현재를 더 열심히 살아가는 것으로 충실히 따를 수 있습니다. 내가 만든 믿음과 사랑과 희망의 방주가 가족과 이웃을 구원하는 축복의 터가 될 것이라 약속하셨으니 최선을 다해서 하늘의 시간을 살아가도록 합시다. ‘임마누엘’ 믿음이 지금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사랑과 희망의 역사가 되도록 최선을 쏟읍시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사제는 기도합니다. 전 교우님들이 주님을 향한 그리움에 흠뻑 젖는 대림이 되시기를, 주님의 오심을 고대하며 오직 하늘의 시간표에 충실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오소서 주 예수여!


장재봉 신부(부산교구 월평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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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11-26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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