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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밟힌 인권… 지목 순간부터 삶은 산산조각

인권 주일에 만난 사람 / ‘화성 8차 사건’ 살인범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한 윤 빈첸시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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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호견 이사장과 윤 빈첸시오씨가 청주 뷰티플라이프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8일은 인권 주일이다. 인간 생명의 존엄을 회복하고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교회와 사회가 우선으로 할 일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짓밟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따라 한국 주교회의는 1982년부터 해마다 대림 제2주일을 ‘인권 주일’로 지내고 있다.

여기 살인범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한 사람이 있다. 범인으로 지목된 순간부터 그의 삶은 산산조각이 났다. 가석방 후에도 그는 이 세상에 없는 존재처럼 숨어지내야만 했다. 그에게 삶의 버팀목은 오직 신앙이었다. “주님께서 나를 알고 계신다”는 믿음이 삶의 희망이었고 빛이었다. 화성 8차 살인범으로 몰린 윤 빈첸시오씨이다. 인권 주일을 맞아 다시는 그와 같은 억울한 인생이 없도록 그를 만났다.



1988년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 범인으로 붙잡힌 윤 빈첸시오씨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말해왔다. “저는 살인자가 아닙니다.”

그는 가족과 연락이 끊긴 채 혼자 살았다. 세상 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2009년 8월, 20년 만에 가석방으로 교도소를 나온 그는 갈 곳이 없었다. 청주교도소에서 인연을 맺게 된 뷰티플라이프 나호견(엘리사벳) 이사장을 찾아갔다. (사)교화복지회 뷰티플라이프는 출소자를 위한 거주 시설이다.

윤씨는 나 이사장을 보자마자 손을 덥석 잡았다. “원장님! 모든 사람이 저를 살인자라고 하는데, 저는 정말 아니거든요. 원장님 한 분이라도 제가 살인자가 아니라고 믿어주시면 원이 없겠습니다.”

뷰티플라이프에서 3년을 지낸 윤씨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지냈다. 금주, 밤 11시 통금, 100만 원 저축, 직장 무단결근 금지 등 시설 규칙은 엄격했다. 윤씨는 단 한 번도 이를 어긴 적이 없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주일 미사에 빠진 적이 없었다. 시설에서 함께 지내는 신자 동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주일 미사를 거를 때에도 그는 반드시 성당에 가서 미사에 참여했다. 윤씨는 2006년 교도소에서 빈첸시오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나 이사장은 시설에 입소한 윤씨를 6개월간 지켜보면서 그의 무죄를 확신했다. “빈첸시오는 말과 행동이 항상 같았어요. 또 소아마비로 다리를 심하게 절룩거리면서도 미사에 가는 모습을 보며 참 대단하다 생각했어요. 하느님께서 정말 기뻐하시겠구나 했죠. 하느님께선 빈첸시오가 어떤 사람인지 아셨을 테니까요.”

윤씨는 일자리가 안정되면서 시설을 나와 방을 얻어 지냈다. 청주교도소에서 근무했던 교도관의 도움으로 자동차 카시트 공장에서 8년째 일해왔다. 나 이사장은 윤씨와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내며 그를 돌봤다. 나 이사장이 교도소에서 처음 윤씨를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윤씨는 늘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나 이사장은 “이춘재가 자백했다는 말을 듣고는 빈첸시오에게 ‘장하다. 네 믿음이 이춘재의 마음을 움직인 거다’고 말해줬다”면서 “결국 빈첸시오의 성실한 삶을 보고 하느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신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올해 9월 DNA 검출로 연쇄살인사건 진범으로 밝혀진 이춘재는 화성 8차 살인사건도 자신의 범행이라고 자백한 바 있다. 이에 윤씨는 8차 사건의 재심을 청구했고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이춘재는 “법정에 증인으로 나가겠다”며 “윤씨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억울함이 밝혀져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씨는 “이춘재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누명을 벗겨준다니 고마울 따름”이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명예를 찾기 위한 긴 싸움에 국민들이 성원해주면 승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재판 결과에 기대를 내비쳤다. 윤씨는 또 “재심이 끝나면 수사 과정에서 주변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해 억울한 상황에 빠지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재소자 출신을 향한 사회의 냉대에는 아쉬움을 표하며 전과자들을 조금 더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주기를 희망했다. “출소자들이 다시 감옥에 가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냉대 때문입니다. 냉대 속에서 살아갈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또 전과가 있다고 하면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더불어 살지 않으면 아무도 살 수 없습니다. 서로를 보듬어 주고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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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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