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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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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은 ‘세계 평화의 날’이자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성탄 팔일 축제 마지막 날인 오늘 그리스도인에게 하느님 사랑의 ‘놀라운 표징’인 성탄 구유를 바라보며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 복음 맥락

오늘 복음은 루카가 전하는 예수님 유년기 이야기(루카 1-2장)에 속합니다. 마태오가 전하는 예수님 유년기 이야기(마태 1-2장)와 세부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이 이야기를 쓴 루카의 의도는 예수님 탄생의 세부적이고 실제적인 이야기를 알리려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삶 안에 예수님 탄생의 의미를 가르치려는 것입니다. 유년기 이야기는 후대에 예수님께서 죽고 부활하신 후 파스카 신앙이 성장한 뒤에 나온 성찰입니다. 그러므로 등장하는 인물이나 세부사항은 모두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 보고 들은 것을 선포하라

루카는 먼저 예수님 탄생의 기쁜 소식을 받는 첫 사람들로 목자들을 등장시킵니다. 그 이유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루카 2,12) 아기의 정체성을 미카서 5장에서 말하는 참된 목자로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포대기’라는 말을 통해 루카는 이 아기가 그냥 하느님이 아니라 사람이 된 하느님이심을 전합니다. ‘구유’는 가축이 먹을 음식을 놓는 곳인데 예수님은 사람들을 위한 양식이기 때문에 구유에 놓입니다.

목자들의 경배를 받으며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의 이미지는 루카가 이방인 청중에게 부활한 주님이신 아기 예수가 이제 하느님이자 인간이며 그의 백성들을 위한 생명의 원천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알리는 방법이었습니다. 루카는 예수님의 탄생을 ‘보고 들은 것’을 모든 이들에게 ‘알리는’ 베들레헴의 목자들의 인격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교회의 목자들이 해야 할 임무를 암시합니다. ‘하느님 말씀의 풍요로움을 가르치고 전달하는 것’이 목자의 본질적인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루카 시대의 사회 배경에서 베들레헴의 목자는 밤에 양을 돌보는 ‘야간의 종’이나 ‘저임금 근로자’에 해당하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루카는 복음서에서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을 강조합니다. 루카에게 구원이란 이 가난한 이들의 삶이 ‘역전’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마니피캇(루카 1,46-55)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바로 이런 구원을 인간에게 베푸시는 하느님을 찬송합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은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루카 1,52-53)

마르틴 루터는 1521년에 마리아를 신앙인의 모범으로 소개하기 위해 ‘마니피캇’ 해설서를 썼는데 이런 묵상으로 책을 시작합니다. “이 노래는 성령에게서 빛을 받고 지식을 얻는 마리아 자신의 체험에서 출발합니다.” 가난한 목자들이 베들레헴의 구유에 처음으로 경배하는 장면은 마리아가 마니피캇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이 하실 아름다운 일에 대해 한 예언이 지금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첫 번째 표징입니다. 예수님은 공생활 중에만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원하시지 않았습니다. 이미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계신’ 순간에 이 일이 일어납니다.


◆ 기억하고 비교하라

목자들이 아기에 관해 들은 말을 전하자 모든 사람이 놀라지만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19)고 합니다. 이 표현은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는 루카 2장 51절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 구절 모두 같은 동사를 사용하지만 전치사는 다릅니다. 앞에서는 ‘함께 모으다’라는 뜻의 전치사 ‘쉰’을, 두 번째 구절에서는 전치사 ‘디아’를 통해 ‘집중과 지속성’을 강조합니다. 쉽게 말해 루카는 예수님 유년기 이야기에서 마리아를 예수님의 온갖 특별한 신비들을 함께 모으고 ‘집중해서 계속 기억하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마리아의 특징을 묘사하는 또 다른 동사는 ‘곰곰이 되새겼다’입니다. 이 동사는 ‘쉼발레인’인데 ‘비교하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계시를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 일어나는 사건과 비교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비교하다’를 마리아의 삶과 관련시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마리아가 자신에 대해 하느님이 갖고 계신 계획에 더 잘 순종하기 위해 ‘말씀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곤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탄생부터 고통스런 죽음과 부활까지 마리아는 이런 일관된 자세로 살았을 것입니다. 마리아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죄의 부재가 인간이 겪는 신앙의 힘든 여정에서 마리아를 면제하지는 않았습니다. 루카가 마리아에게 사용한 두 동사들(간직하다, 곰곰이 되새기다)에 담긴 의미는 마리아가 말씀을 ‘마음속에 받아들이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마리아는 성경을 삶에 비춰 읽고 기도하며 예수님 제자로 살아가는 이들의 충실한 이콘입니다.


◆ “여인에게서 태어나”

제2독서에서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베들레헴의 아기, 마리아라는 한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갈라 4,4) 놓인 아기가 어느 날 죽음에서 부활한 예수님과 같은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분의 형제와 자매로서 하느님 가정의 지체가 됩니다. 성령 안에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갈라 4,6)라고 부르며 살아갑니다.

세상의 눈과 인간의 눈은 항상 높은 곳을 바라보지만 하느님 자녀는 가난한 사람을 굽어보시는 하느님 시선을 본받기 위해 자신을 훈련합니다. 새해 첫날 성탄 구유를 바라보며 우리 마음속 가장 깊은 곳, 가장 초라하고 비참한 곳까지 하느님 말씀이 깊이 스며들어 어두움과 불안, 절망, 악습과 패배주의를 몰아내고 우리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강복하소서. 당신 얼굴을 저희에게 비추소서.”(시편 67,2)




임숙희(레지나) 엔아르케성경삶연구소 소장
교황청립 성서대학원(성서학 석사)을 졸업하고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영성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과 평생교육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로마서에서 기도를 배우다」 등 다양한 책을 집필, 번역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9-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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