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교구/주교회의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세상살이 신앙살이] (515) 신부님은 내 운명!?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얼마 전 서울 명동에서 치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치료를 마치고 지하철을 타려 명동역으로 향했습니다. 비가 오늘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거리와 지하철 역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지하철 안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왔다 갔다 했습니다. 나는 입구에서 개찰을 한 후 지하철 4호선 이촌 역 방향 쪽에 서 있었습니다.

그때, 한 할머니가 내가 있는 쪽을 향해 고개를 갸웃 갸웃 거리며 걸어오셨습니다. 그러다 내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시더니 순간, 활짝 웃으며 말하셨습니다.

“맞다. 신부님. 신부님, 맞으시죠?”

그 어르신은 나를 보자, 당신이 아는 신부가 맞는지, 내 쪽으로 조심 조심 다가왔던 것입니다. 나 또한 그 어르신의 얼굴을 보자, 미사 때 뵌 것이 생각이 나서 말했습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가끔 저희 본당에 미사 오시는 어르신 맞죠?”

“아, 맞아요. 어머 어머, 우리 신부님. 신부님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 야, 정말 신부님, 반가워요. 평소에 신부님을 꼭 한 번 뵙고 싶었는데, 어떻게 여기서, 이 사람 많은 데서 만나게 될 줄이야. 신부님, 너무나도 반가워요.”

80대 중반 정도가 되어 보이는 그 어르신은 마치 소녀처럼 그렇게 기뻐 뛰며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참으로 많았는데…. 그 어르신이 소녀처럼 좋아도 너무 좋아하시니 어찌나 민망하고 쑥스러운지! 그 할머니는 나와 같은 지하철을 타고, 나와 같은 방향, 즉 이촌 역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어느덧 지하철이 왔습니다. 그래서 나와 그 어르신은 지하철을 탔습니다. 타자마자 이내 곧 누군가가 좌석을 양보했는데, 그 어르신은 손사래를 치면서 당신은 원래 지하철을 타면 서서 간다고 하시더니, 내 옆에 서서 손잡이를 붙잡으셨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쉬지 않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 내가 모태 신앙인데 (웅얼웅얼) … 우리 집에 누가 천주교 신자이고 (지하철 지나가는 소리) … 우리 남편의 형님의 사돈이 어느 본당에서 사목위원을 하고 있으며 (지하철 안내 방송) … 어느 신부님하고 친하고 (사람들이 내리고 타고) … 아이고, 좋아라. 이렇게 지하철에서 신부님을 만나고.”

그 어르신은 좌석이 주변에 있는데도 그 자리에 가서 앉지 않으시고, 내 옆에 서서 말씀하시고 또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이 천주교 집안인데 … 나는 어느 신부님하고 친한데 … 그리고 젊을 때 본당에서 무슨 활동을 했는데….”

그 어르신은 했던 말씀 또 하고, 또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결론은 ‘지하철에서 신부님을 만나니, 너무 좋다’였습니다. 이윽고 이촌역에 내렸고, 다시 빗길을 걸으며 버스 정류소로 갔습니다. 우리는 가는 길이 달라 신호등 앞에 서서 헤어지는 순간 그 할머니는,

“신부님, 내가 약을 좀 사 드릴까? 뭐 필요한 약이 있어요? 지금 가는 약국은 내가 잘 아는 약국인데?”

“아뇨, 저 아직 약은 안 필요한데. 암튼 조심해서 가셔요!”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다음 날, 그 어르신은 본당 미사 때에 오셨습니다. 미사 후 나는 교우 분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그 어르신은 해맑은 표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 어제 우리가 지하철에서 만나다니, 신부님은 나의 운명인가봐요.”

한 평생을 살아오신 할머니의 인생! 한 순간, 지하철에서 만난 신부를 보고도 ‘운명’이라 말씀하시니. 그 어르신은 늘 거룩함이 그리웠나봅니다. 별 볼일 없는 사람을 만나도, ‘운명’이라 말씀해 주시니! 그 날 나는 거룩함의 절정이신 주님의 은총이 언제나 그 할머니와 함께 하기를 기도드렸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9-12-26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3. 29

마태 19장 21절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