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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영성 이야기] (7)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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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1991년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 전라북도 전주 숲정이성당에서 혼인했다. 전주가 남편 예로니모의 고향이긴 하지만, 예로니모는 대입 이후 줄곧 서울 생활을 했다. 그래서 예로니모의 지인들과 우리 가족의 지인들은 3대의 전세버스에 나눠 타고 혼인미사에 참석했다.

새벽부터 집을 나와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전세버스에 하객들과 함께 타고 서울로 향하는데 겨울이어서인지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버스에 타고서야 예로니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생겼는데 그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침 일찍 집을 나와 이렇게 어둠이 깔릴 때까지 온전한 하루를 우리들의 혼인을 축하하기 위해 내어주신 하객분들께 너무 감사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꺼냈다.

“이분들께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 우리가 잘 살아야지, 이렇게 먼 길까지 와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셨는데 당연히 잘 살겠지, 우리가 잘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걸까? 우선 서로 싸우지 말고 서로 존중하고 뭐든 숨기는 것 없이 개방하고 아이들도 잘 키우고 부모님께도 효도하고…. 이렇게 우리 둘이서만 잘사는 것으로는 뭔가 부족하지 않을까? 누구나 다 그렇게는 살려고 노력하겠지. 우리는 부부로서 세상에 열린 부부가 됐으면 좋겠어. 우리만 잘 먹고 잘살기 위해 살지 말고, 우리가 함께 봉사하거나 우리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부부, 예로니모·헬레나 개인으로도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하겠지만 우리가 부부로서 함께 세상을 위해 뭔가 하는 부부가 되면 좋겠어.”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기쁘고 짜릿해서 손을 꼭 잡았고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고 가슴이 벅찼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28살, 30살 젊은 신혼부부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과거의 우리가 대견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날 버스 안에서의 약속을 지키도록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큰아이는 발에 이상이 있어 태어나서부터 6년 이상 교정과 수술을 반복해야 했고, 둘째 아이는 3살 무렵 발달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왜 이러시나 하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견디기 힘든 고통의 나날이었다.

셋째, 넷째 아이를 낳고는 나는 4명의 아이를 키우느라 날마다 전쟁인데 예로니모는 예로니모대로 일이 많아 매일 늦게 들어오고 주말이면 주중의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어야 한다며 운동하느라 집안일은 뒷전일 때 서로에 대한 실망과 환멸이 깊어져 갔다. 우리의 꿈은 어느새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그 무렵 본당 신부님의 권유로 ME 주말에 참가했고 발표 부부로 활동하게 되면서 우리 부부의 삶을 개방하고 나눌 기회가 많아졌다. ME 주말에 참가한 부부들이 우리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하고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고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며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보다는 기쁨과 감사가 앞섰다.

발표 부부로 몇 년을 활동하던 어느 날 예로니모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여보, 우리 혼인식 날 버스 안에서 나눴던 대화 기억나? 그때 우리 세상에 열린 부부가 되자고 약속했잖아? 그런데 우리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 것 아냐? 정말 신기하지? 하느님이 우리의 꿈을 이렇게 이루어주셨네?”

우린 또 한 번 전율을 느꼈다. 우리가 그때 했던 약속을 잊고 지내던 그 시간 동안에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꿈을 이루어주시기 위해 준비해놓고 계셨던 것이다. 아마도 그 꿈이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이었나 보다.

주님의 뜻과 우리의 꿈이 딱 맞아떨어질 때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고유경 (헬레나·ME 한국협의회 총무 분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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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2-11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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