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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신앙살이] (522) 가장 감동적인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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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사촌 형님 내외와 후배 부부가 함께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려고 2박3일 일정으로 제주도에서 서울로 오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서울 지역 순례를 다니기로 약속을 이미 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식구들이 오시는 날, 한 수녀님의 선종 공문을 받았습니다. 또한 수녀님 선종 관련 일정과 2박3일 서울 순례 일정이 맞물려 있었습니다. 나는 수녀원 빈소에 가서 조문을 하고 미사도 봉헌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일행들 앞에서는 태연하게 서울 중심의 순례를 다녔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절두산성지, 가회동성당, 명동대성당, 광희문성지, 서소문성지, 옛날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성당, 용산성당 성직자묘지, 새남터성지 등을 방문했습니다. 우리 일행은 순교자들의 유해 앞에서 기도했고, 각 성지에 계신 해설사 분들의 친절한 안내도 받았으며, 새남터성지에서는 동영상을 시청했고, 각 성지에선 소개 리플렛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선종하신 수녀님 빈소를 찾아 조문하지 못함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저녁 무렵 나는 조심스럽게 형님 내외의 의중을 물었습니다.

“형님, 사실은 어제 수녀님이 선종하셨고, 내일이 장례미사인데, 내일은 형님 내외를 공항에 모셔다 드려야 할 것 같아서…. 혹시 오늘 저녁 그 수녀원에 가서 조문하고 함께 미사를 봉헌하면 어떨까요? 수녀원 찾아 가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안 가셔도 됩니다.”

그러자 형수님께선 오히려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습니다.

“아니, 그런 일이 있었으면 진즉에 말을 하지 그랬어요. 우리야 당연히 좋죠. 그런데 저녁시간에 수녀원에 들어갈 수 있어요? 수녀원은 멀어요? 우리는 몰라서 그렇지. 이럴 때 수녀원 가서 기도도 하고, 얼마나 좋아요!”

그리고 형님도 말씀하시길, “아니, 우리가 살면서 수녀님 빈소에 언제 또 갈 수 있겠어요? 갈 수만 있다면 저희도 가고 싶어요.”

형님 내외를 배려하고 싶은 나의 생각과는 달리, 형님 내외의 적극적인 모습에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수녀원을 찾아갔습니다. 빈소는 수녀원 교육관에 마련돼 있었습니다. 선종하신 수녀님의 관, 영정 사진. 그리고 슬픔 속에 계신 수녀님 몇 분이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기도가 끝나자, 우리 일행은 그 자리에 계신 수녀님들 몇 분과 함께 선종하신 수녀님을 위해 조용히 미사를 봉헌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미사를 잘 마치고, 수녀님들께 애도의 인사를 드린 후 수녀원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러자 대뜸 형님이 먼저 하시는 말씀이, “오늘 하루, 동생 신부님과 함께 했던 순례도 좋았지만, 순례를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이건 하느님 은총 같은데, 예상치 못한 수녀님의 장례 미사를 함께 봉헌할 수 있어서 저에게는 큰 축복이고 묵상거리였습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형수님도, “저도 수녀님 장례미사는 처음이에요. 교구에서 신부님께서 선종하셨다고 하면, 본당 신자들과 함께 가서 연도를 바치고 미사를 봉헌한 적은 있는데. 한 평생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봉헌하신 수녀님의 조용한 장례미사가 너무나 좋았어요. 선종하신 수녀님의 약력을 보니 거의 60년 동안이나 수도 생활을 하셨더라고요. 말이 60년이지! 암튼 그렇게 한 평생을 수도생활을 하시다가 하느님 품으로 가신 수녀님의 영정 사진을 보면서 저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라고 했습니다.

하루 종일 순례를 하면서 과거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순교하신 분들을 만나고, 근대에 있어서 한국 교회를 일으키려 자신의 전부를 내어 놓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비록 그 분들 만큼은 안 된다 할지라도, 60년 동안 자신의 봉헌한 어느 노수도자의 영정 사진 속 수녀님 모습. 그 분의 빈소 방문 역시 가장 감동적인 순례였음을 고백합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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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2-11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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