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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이 봉사하신 ‘앞치마 주교님’의 참사랑

[특별기고] 천상에 계신 나길모 주교님께 / 이영일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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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인천 지역 유일의 무료급식소였던 인천교구 성언의 집을 때마다 홀로 찾아와 앞치마 두르고 봉사활동에 임했던 나길모 주교. 옆은 필자. 이영일 수녀 제공



가난한 이들을 향한 주교님 사랑

“원장 수녀님! 나 오늘 성언의 집에 봉사하러 가려는데, 절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마세요.”

매번 몰래 전화를 걸어오신 분은 당시 인천교구장 나길모 주교님이었다. 나 주교님은 제가 1996~2000년 인천교구 무료급식소 ‘성언의 집’에서 소임을 할 때, 많은 관심과 도움을 주셨다. 직접 전화를 하시거나, 소리 없이 혼자 찾아오셔서 봉사해주신 ‘앞치마 주교님’이셨다. 얼마나 많이 봉사하셨는지…. 그때 사랑의 주교님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주교님의 숨은 봉사 활동을 나중에 알게 된 가톨릭평화방송에서 촬영을 원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교구청 신부님들도 모르게 봉사하는 분이셨다. 그래서 많은 이가 주교님께서 무료급식 봉사를 하셨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당시 IMF 외환위기 이후 매일 400여 명의 노숙인이 몰려오는 걸 보시며 주교님은 측은함을 감추지 못하시고 그분들과 함께하고자 하셨다.



가난하게 사신 주교님

당시 인천 답동주교좌성당 사목위원 분들이 전해준 이야기 하나. 주교님은 겨울철만 되면 찬바람 들이치는 교구청 창틀을 손수 비닐로 방풍 작업을 하신다는 것이다. 양말마저 기워 신는 분이셨으니. 1999년 최기산 신부님께서 주교님이 되셨을 땐 답동본당 주임 이수일 신부님이 나 주교님의 주교관을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정말 허름하고 낡은 작은 1인용 침대를 처음 본 것이다. 이후 신부님께서 침구류를 새로 구입해 드리면서 주교님을 꼭 안아드리고 눈물을 흘리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뭉클했다. 행사 때엔 늘 참석 인원을 미리 파악해 음식이 남지 않도록 당부하셨다.



옆집 할아버지처럼

“오늘은 수녀님 차로 미사 후에 장애인의 집에 가겠어요.”

아침 미사에 참여하러 답동성당에 오르는 길에 주교님께서 말씀을 건네신다. 이윽고 차에 오르신 주교님. “수녀님은 운전면허 따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1년 됐어요.” “아니, 왕초보이신 줄 알았으면 안 탔을 텐데, 이런! 하하~”

주교님께서는 이처럼 늘 주변 사람들을 미소 짓게 해주셨다. 꼬마들이 다가와 “주교님, 발 치수가 얼마에요?” 하고 장난스레 물어도 “너만 알아야 해. 비밀인데 300이야~” 하시며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아이들을 대해주셨다.



백합 꽃다발 사건

어느 해 6월 초순. 주교님께서 또 봉사하러 오신다고 연락을 주셨다. ‘옳거니, 주교님 영명축일을 축하해드리자!’

봉사자들과 함께 선물과 케이크, 싱싱한 백합 꽃다발을 준비했다. 조촐한 축하식 중에 선물을 받으신 주교님이 갑자기 “꽃다발은 성모님께 드리겠습니다”고 하신다. 영문도 모르고 “주교님, 예쁜 꽃다발이니 응접실에 두셔요” 하니 “아니에요. 성모님께 드릴게요”라고 하시는 것 아닌가. 나중에 안 사실인데, 주교님에겐 백합 알레르기가 있었다. 당시 교구청이 견진성사 등 주교님 본당 방문 때 백합류는 삼가해 달라고 통보한다는 사실을 우리만 까맣게 몰랐던 것이다.



전구해주세요, 주교님

긴 세월 부활과 성탄절에 카드를 드리면 꼭 답장해주셨던 주교님. 이젠 제 기도를 천국에 봉헌하겠습니다. 가난과 참사랑을 몸소 보여주신 주교님이 그립습니다. 주님 품 안에 편히 쉬세요. 그리고 천국에서 한국 교회와 인천교구를 위해 전구해 주세요.



이영일 수녀(거룩한 말씀의 수녀회,

인천교구 성언의 집 제2대 원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0-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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