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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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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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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말씀으로 저희 삶을 비춰 주소서.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들아, 그분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미하여라. 그분께서 해 주신 일 하나도 잊지 마라.”(시편 103,1-2) 오늘 화답송인 이 시편은 저의 애송 시편입니다. 이 시인은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은총 가운데 있거나 죄를 지었거나 하느님이 저에게 해주신 일을 기억하면서 제 상황과 상관없이 한결같이 자비로운 하느님을 찬미하라고,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이것이 인생의 본질이라고 가르칩니다.


■ 복음의 맥락

사순시기를 앞둔 오늘 복음은 산상설교(마태 5-7) 절정에 해당합니다. 복음은 두 단락(5,38-42; 5,43-48)으로 이뤄지는데 주제는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지 말고 사랑하고 용서하라 입니다. 마태오의 청중은 대부분 유다교에서 개종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종교적 관점에서 자신을 평가하는 데 사용하는 척도는 ‘마음의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나는 사랑으로 행동했는가?”보다 “나는 율법에 순종했는가? 어떤 규칙을 어긴 적은 없는가?”를 질문하는 데 익숙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율법주의를 넘어 그리스도인의 특성인 참된 사랑을 실천하라고 초대합니다.


■ 폭력을 포기하여라

예수님은 먼저 고대의 ‘동태 복수법’에서 출발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무한하신 선하심과 자비’를 삶의 방향으로 제시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하늘나라 선포로 가능하게 됐습니다. 폭력을 포기한 것은 예수님이 수난에서 보여 주신 태도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태도는 악을 선으로 이기시는 놀라운 교육입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는 지점에 이르는 첫 단계는 폭력에 폭력으로 응답하지 않는 것, 비폭력입니다. 원수에 대한 사랑은 느린 여정을 요구합니다. 자발적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며 훈련, 절제, 분노의 본능과 미움의 유혹을 거스르는 투쟁, 식별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고대인들 안에서 동태 복수법은 폭력을 완화시키는 중요한 기능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과 나약함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에서 악을 근본적으로 몰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모욕에 아예 응답하지 않는 것, 가장 수동적인 행위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임을 아십니다. 이렇게 해서 악의 탄생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는 자신이 겪는 큰 어려움 안에서도 자신이 이미 받은 하느님 사랑의 관점에서 모든 이의 선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자신에게 악을 행한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게 응답합니다.


■ 네 이웃을 사랑하라

이어 예수님은 이웃 사랑에 대해 본격적으로 가르치십니다. 이웃은 우리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 가족, 친구, 동료, 동족, 넓게는 타자도 포함됩니다. 이웃은 한 마디로 ‘나의 사람들’입니다. 나와 가까운 이들에 대한 사랑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인데 왜 굳이 지켜야할 계명으로 정해놓고 항상 지키게 했을까요? 아마도 우리가 제대로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바로 ‘나의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원수는 집 안에 있다”라는 라틴 속담이 있습니다. ‘나의 사람들’을 존경과 예의로 대하기보다 내 만족과 필요에 따라 그들을 대하지는 않습니까?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은 내 이웃을 바라보는 시선을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초대입니다. 내 이웃을 거룩한 ‘주님의 성전’(1코린 3,16-23), 고유한 소명과 은사를 가진 하느님 자녀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진정한 이웃 사랑이 태어납니다. “나는 우리 안에서 우리 편에서 먼저 행함이 없이 세상 밖에서 세상을 향상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네덜란드 작가 에티 힐레줌).


■ 원수를 사랑하라

예수님은 이웃만이 아니라 박해하는 원수들도 사랑하라고 합니다. ‘원수’에 해당하는 원어는 ‘미움, 적대, 반대’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마태오복음서에서 박해자, 이교인, 우상숭배자, 그리스도인의 이상을 변질시키는 사람들인데 온갖 형태로 우리를 미워하고 반대하면서 고통스럽게 하는 모든 이를 상징합니다.

‘사랑하다’(아가파오(?γαπ?ω)라는 동사는 신약에서 개인의 감정적인 사랑보다는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 봉헌하는 사랑을 가리킵니다. 이런 종류의 사랑은 교육 받고 훈련돼야 하는 사랑입니다. 지식(하느님에 대한 지식)과 이해(악을 구분하고 판단하는 것, 말의 신중함, 현실 관계에서 적응하는 능력)로 계속 성장해야 하는 사랑입니다.(필리 1,9-11)

나아가 예수님은 원수에 대한 사랑을 말씀하시면서 기도와 연결하십니다. 기도 안에서, 하느님 은총을 통해,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신 하느님의 신비에 비춰서, 완전하고 흠 없는 사랑으로 우리에게 악을 행한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원수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내적으로 가장 큰 에너지, 즉 신앙의 힘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처럼 완전하게 되어라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사랑의 계명을 아버지의 모범과 연결합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 ‘완전한’(텔레이오스(τ?λει??)이라는 말은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는 뜻이 아니라 ‘완성한, 이룬’이라는 뜻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모델로 삼아 우리도 이 지상에서 사랑을 완성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느님 아들이 우리 가운데 오신 것 때문에, 말과 행위로 하느님의 완전함을 보여주신 것 때문에 우리는 이런 사랑에 접근할 수 있게 됐습니다.

‘완전한’이라는 말은 ‘거룩한’이라는 말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거룩함은 인간에 대한 자비로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이웃 사랑과 원수 사랑에 대해서 가르치시면서 어떤 의무를 강요하기보다는 우리 존재의 뿌리, 우리가 하느님 자녀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십니다. 유다 교육 철학의 모토는 “너희 창조주를 본받으라”입니다.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을 가르치는 학교인 복음서에서 오늘도 사랑의 수업을 받습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임숙희(레지나)
엔아르케성경삶연구소 소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0-02-18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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