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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신앙살이] (528) 거룩한 우연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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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르드 성지, 수많은 순례자들이 지나다니는 새벽 거리에서, 미사 봉헌하러 성당 가는 길에 뜻밖에 만난 자매님이 나를 보며 말없이,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다…, 이윽고 눈물을 멈춘 자매님은 다시금 미소를 짓더니 내게 말했습니다.

“신부님, 지금 저에게 안수를 해주세요. 저도 일행이 있어서 지금 가야해요.”

“자매님도 다른 일행과 함께 오셨군요.”

“예, 저는 산티아고 가는 일행들과 어제 루르드를 도착했어요. 그래서 침수 예절도 하고, 순례도 했어요. 그리고 오늘 새벽에 미사를 드리고 나오는 길이에요. 이제 곧 산티아고로 넘어가는데 신부님을 갑자기 만난 거예요.”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꿈인지, 생시인지…’ 암튼 엉겁결에 안수를 드리는데, 자매님께서 간절한 기도 지향을 갖고 안수를 받으셨는지, 안수 후에 나의 기운이 쫘 ? 악 빠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안수 후 자매님은 눈물을 닦더니 감사 인사를 하고, 해맑은 얼굴로 자신들의 일행을 향해 뛰어갔습니다.

그 후 4개월이 지났을까! 며칠 전, 어느 사무실에서 그 자매님을 또 다시 우연히 만났습니다. 나랑 눈이 마주친 자매님께선 반갑게 인사를 하더니, 주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나와 잠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자 내가 먼저 물었습니다.

“자매님, 그 때 산티아고는 잘 다녀오셨어요?”

“신부님, 죄송해요, 그렇지 않아도 연락을 드린다고 했는데, 바쁜 일 때문에 못 했어요.”

“그건 그렇고요, 자매님, 그날 루르드에서 왜 그렇게 많이 우셨어요?”

“아, 생각해 보니 부끄럽네요, 하하. 사실 제 평생소원이 산티아고에 가는 것이라, 몇 년 전부터 준비를 했었어요. 그리고 회사 일도 휴가랑 다 맞추어서 차질이 없게 했고요. 남편과 애들 역시, 내가 오래 전부터 산티아고 간다는 말을 했기에 이해를 해주었고요. 그런데 막상 산티아고 가기 열흘 전부터 무릎과 고관절 통증으로 무척 아팠어요. 심지어 출발 전날에는 비행기를 제대로 탈 수 있을까 두려울 정도로 아팠어요. 그래도 일행들과 비행기를 탔고 프랑스에 왔어요. 계속 기도만 했어요. 그러다 루르드에 도착해서 다리를 낫게 하고 싶어서 엉엉 울며, 눈물로 호소하듯 침수 예절을 했어요. 그리고 다음 날, 새벽 미사를 봉헌하고 나오는 길에 신부님을 만난 거예요. 그런데 저는 신부님을 만났다기보다는 순간, 예수님을 만난 것이라 생각했어요. 마치 예수님께서 내 앞에 나타나, 산티아고 순례를 잘 할 수 있을 거라 위로해주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하염없이 눈물이 났던 거예요. 그리고 신부님 안수를 받는데, 정말 예수님께서 안수를 해 주시는 것 같이 행복했어요. 그런데 혹시 기억나세요, 신부님에게 안수를 받고난 후, 제가 우리 일행을 찾으러 뛰어가던 모습을! 순간 뛰면서 알았어요. 기도의 응답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 기쁨에 저는 20일 동안 산티아고를 무사히, 기쁘게, 씩씩하게 잘 다녀왔어요.”

루르드의 어두운 새벽, 비오는 거리에서 만난 자매님과 추억을 나누는데 암튼 놀랐습니다. 실제로 1-2초 사이로 서로가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었기에! 우연치고는 너무나 ‘거룩한 우연’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거룩한 우연은 자매님의 뜨거운 눈물이 묻은 간절한 기도 때문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족입니다만, 그날 자매님이 나를 보는 순간, 예수님께서 자신을 찾아오신 것 같았다고 하셨는데, 그 말을 듣는 나는 예수님께 민망했습니다. 지금의 나는 예수님보다 20년을 더 살았고, 몸무게는 예수님보다 더 많이 나가는데, 배 나온 나를 예수님 본 듯 하셨다니! 그날 자매님의 이야기를 듣는데, 나는 속으로 이제는 살을 좀 빼야겠다는 다짐만 몇 번을 했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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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3-24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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