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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신앙살이] (536) 꽃을 사랑한 신부님 (속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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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나의 하루는 ‘꽃을 사랑하는 동창 신부님’의 뜻을 이어받아, 새벽마다 성지 마당에 풍성하게 널려있는 화분에 물을 주면서 시작합니다. 처음 그 꽃들을 선물 받았을 땐, 4월 한 달만 피었다 지는 봄꽃이라 생각했기에 ‘한 달만 물을 잘 주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꽃들은 생각보다 잘 피어서 5월을 훌~쩍 넘길 것 같습니다. 물을 줄 때면 1시간 30분 동안 쪼그려 앉아 있어야 하기에 허리도 아프고, 특히 배가 나온 사람이라 아랫배와 무릎이 눌려 고행의 시간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 꽃들에게 ‘너희들은 왜 이렇게 잘 피는 거야!’라고 속상함(?)의 화풀이를 하지만, ‘사랑은 책임’이라는 생각에 꽃을 잘 돌보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활짝 핀 꽃들 사이로 초록 줄기들이 올라왔습니다. 자세히 봤더니 꽃들 사이에서 새로운 꽃망울들이 여기저기서 피어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도 놀란 나는 꽃을 샀던 농원에 문의를 했는데, 듣게 된 답은 ‘그 꽃은 잘 키우면 가을까지 풍성하게 성당을 꾸며 줄 겁니다’였습니다. 그 말에 정신마저 아찔해졌습니다. ‘그게 아닌데! 가을까지 꽃이 핀다면, 나 역시 가을까지 매일 이 꽃들에게 물을 주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 날 얼마나 놀랐으면 꿈속에서 전정가위로 새로 난 꽃망울을 다 잘랐고, 그랬더니 어느 새 10배, 100배의 꽃망울이 다시 피어나 성지 마당이 황홀한 꽃밭으로 변해가는 악몽(?)까지 꾸었습니다.

동창 신부님의 사랑스런 꾐(?)에 빠져…. ‘신자들과 미사를 봉헌하고 싶은 사제의 마음’을 꽃으로 표현하고자 성지 마당에 꾸며 놓은 노란색 꽃. 그러나 꽃을 구입하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잘 가꾸는 일’임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그래서 또 결심을 해 보았습니다. ‘그래, 좋다. 이왕 가꾸는 거, 올 가을까지 물을 잘 주자. 신자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빈 말이 아니라는 것을 내 스스로가 행동으로 표현하자.’ 그 후 며칠 뒤, 어느 봉사자 가족들이 새남터 성지를 방문하셨습니다. 그 분들이 꽃들을 보더니 하셨던 첫 마디!

“강 신부님, 달리아 꽃, 다년초인 거 아시죠? 정말 잘 키우시네요. 늦가을에 잎이 지면, 뿌리만 잘라서 겨울 동안 잘 보관해 보세요. 내년에도 풍성하게 다시 필거에요.”

“네에? 저 꽃이 다년초라고요? 그래서 내년에도 다시 핀다고요?”

이 말에는 그만 기겁을 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동창 신부님으로부터 꽃을 선물 받을 땐 ‘좋은 꽃들을 무상으로 기증 받는다’는 기쁨과 성지 마당을 한 순간에 천상의 꽃밭으로 바꿀 것이라는 설렘에 무슨 꽃이든 다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정신을 차리고 검색을 해 보니 해마다 가을까지 피는 다년초 꽃, 달리아를 선물 받았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꽃에 물을 주면서, 이게 내 운명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물을 주다가, 문득 놓쳐버린 중요한 것들이 내 마음 속에서 떠올랐습니다.

친구가 주임 신부로 있는 본당에 꽃을 선물해 주고 싶었던 동창 신부님의 순수한 마음. 농원은 소개해 주신 분께서는 운송비를 절약해 주시고자, 지방에 있는 농원을 직접 찾아가서 꽃을 받아다가 성지 마당에 내려놓고는 조용히 가시던 모습. 꽃을 받고 화분에 옮겨 심은 후 성지 마당 어느 곳에 놓으면 좋을까 하며 이리 저리 꽃 놓을 위치를 잡으며 뛰어다닌 동료 신부님들. 이러한 것들이 떠오르면서, 그것을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자기 생각에만 빠져 살면, 진정 작고 소중한 것들 건너뛰거나 놓쳐 버리고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주변을 살피면서, 나를 위해 묵묵히 응원해 주시는 분들을 떠올리며 화살기도라도 해 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해졌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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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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