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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신부 ‘성해 주머니’ 발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독일 수도원 소장… ‘유해 증명서’도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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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신부 유해 일부를 담았던 주머니가 확인됐다. <사진>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최응천)은 최근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선교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 도록을 발간하고, 선교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던 성 김대건 신부 성해 주머니를 사진과 함께 소개했다.

성해 주머니는 성 김대건 신부 유해 중 흉골(갈비뼈)을 담을 때 사용됐다. 빨간 천으로 만들어졌고 별과 나뭇가지, 성작과 성경이 수 놓여 있다. 왼쪽 아래에는 ‘STERNUM B. ANDR. KIM’이, 오른쪽 아래에는 ‘Primi SACER. COREANI MARTYRIS’가 자수돼 있다. 한국의 최초 순교자 복자 안드레아 김의 흉골이라는 뜻이다. 성 김대건 신부는 1925년 순교자 79위와 같이 시복됐기에 성해 주머니도 1925년 이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도록에는 성 김대건 신부와 성 앵베르(제2대 조선대목구장) 주교, 성 모방 신부, 성 샤스탕 신부 유해를 확인하는 증명서도 있다. 성해 증명서는 초대 원산교구장이자 성 베네딕도회 덕원수도원장을 지낸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 아빠스가 1920년 작성했다. 성 김대건 신부는 1846년 한강 새남터에서 참수됐고 시신은 신자들에 의해 몰래 옮겨져 안성 미리내에 안치됐다가 이후 서울 용산신학교로 옮겨졌다.

재단측은 성해 증명서와 성해 주머니를 바탕으로 “확실한 일시를 알기 어렵지만, 최소 두 차례 이상 선교박물관으로 한국 천주교회 성인의 유해가 옮겨졌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또 “성해 증명서와 성해 주머니가 선교박물관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2021년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앞둔 시점에 알릴 수 있게 돼 매우 뜻깊다”고 했다.

재단은 두 유물 이외에도 선교박물관이 소장한 한국문화재 1825점을 도록에 상세하게 담아냈다. 2016~2017년 독일 현지에서 실태 조사한 결과를 집대성했다. 선교박물관이 소장한 한국문화재는 한국에 파견된 성 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소속 선교사들이 수집한 자료다. 1909년부터 110년간 이어온 한국 선교 활동의 산물로 수도자들은 한국에 파견될 선교사의 한국 문화 교육을 위한 목적으로 다양한 자료를 수집했다. 일상생활과 관련된 민속 유물과 상복과 혼례복 등 복식 유물이 전체 문화재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가톨릭교회 유물로는 옥사덕수용소 관련 유물과 교리서 「주교요지」와 장례예식서 「천주성교예규」 목판 등이 있다. 옥사덕수용소는 1950년대 북한 공산 정권에 의해 체포된 성직자, 수도자들이 감금됐던 곳이다. 성 베네딕도회 수도자들 역시 이곳에서 박해를 받았고 일부는 죽고 일부는 살아서 독일로 돌아갔다. 옥사덕수용소 관련 유물은 생환자들이 수용소에서 사용하던 생활용품과 전례 도구 등으로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 아빠스가 입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피 묻은 장백의도 있다.

재단은 2015년 수도원 선교박물관 한국 전시실 보수공사에 재정 지원을 하면서 선교박물관과 인연을 맺었다. 이는 선교박물관이 소장한 한국문화재 조사와 연구로 이어졌다. 선교박물관은 조선 시대 보군이 입은 면피갑과 혼례용 단령을 재단에 기증하기도 했다.

선교박물관장 테오필 가우스 신부는 발간사에서 “도록은 재단과 수년간에 걸친 오랜 협업이 낳은 큰 결실”이라며 “재단과 앞으로 함께할 협력 사업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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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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