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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영성 이야기] (28) 매일 매일 천사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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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째 나는 묵주 기도를 바치며 신나는 발걸음으로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소명을 완수하려 출근한다. 한 시간 걸려 도착한 어린이집 문 앞에 잠시 멈춰 서서 성호를 그으며 선물 같은 이 시간! 주님께 우리 아이들을 의탁하는 화살기도를 드린 후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일찍 등원한 재롱들이 돌고래 소리를 내며 온몸으로 나를 반긴다.

칭찬을 기대하며 모범적으로 인사하는 친구,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달려와 와락 안기는 친구, 부끄러워 먼저 이름을 불러 주기를 기다리며 얌전히 쳐다보는 다양한 성향의 친구들을 볼 때면, ‘나는 하느님께 과연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고 있을까? 천국에 가면 이런 느낌일까?’하는 짧은 묵상을 하면서 수많은 종류의 직업 가운데 나에게 순수한 웃음과 매 순간 감동이 함께하는 이런 고귀한 일을 할 수 있는 소명을 주신 주님께 고개 숙여 감사와 찬미를 드리게 된다.

꾸르실료에 입소하기 전에는 유아 교육을 전공한 교육자로서 영유아 발달에 맞는 과업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 우선적인 사명감이었다. 그러나 내가 꾸르실료에서 체험한 것은, 무엇이나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믿고 사랑으로 기다려 주는 것이었다.

꾸르실료 교육 중 ‘내가 무엇이라고 이 오랜 시간 잊지 않고 기다려 주셨습니까?’라며 얼마나 통곡하였던가. 그런 체험과 깨달음이 있었기에 나는 등원하는 원아 한 명 한 명에게 눈을 맞추고 작은 목소리와 유치한 몸짓, 환한 표정으로 “너는 참 귀하고 소중한 자랑스러운 아이야. 우리에게 와줘서 참 고맙고 사랑해”하고 속삭여 주게 되었다.

이런 나의 고백에 모르는 척 듣고 있던 아이는 기분이 좋아 몸의 균형을 잃을 정도로 까르르 웃으며 후다닥 뛰어 교실로 들어간다. 조용해진 시간, 책상 의자에 앉아 십자고상을 바라보며 ‘내가 봐도 이 아이들이 이토록 사랑스러운데, 주님의 자녀인 우리 각자는 하느님 보시기에 얼마나 귀하고 사랑스러우실까? 주님께서 저에게 맡기신 천사들을 주님 사랑으로 함께할 수 있도록 순간순간 성령께서 제 안에서 활동하소서. 저는 그저 당신의 도구일 뿐입니다.’라는 기도와 내 스무 살 앳된 나이에 만났던 할머니들이 생각나며 그리워진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갑자기 목표를 잃어버린 것처럼 삶이 너무 허무하다고 느껴졌던 나는 ‘주님! 제가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저도 기쁘게 살고 싶어요.’라며 하느님께 매달리던 추운 겨울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스쳐 지나며 보았던 양로원이 떠올라 무작정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이든 내가 할 수 있는 봉사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할머니들을 목욕탕까지 차로 모시고 가서 목욕시켜드린 뒤 양로원으로 모셔 오는 일을 나에게 맡기셨다. 고작 스무 살 나이로 할머니 몇 분의 때를 벗겨 드리는 목욕은 쉽지 않았지만, 연신 아이 마냥 함박웃음 지으시며 개운하다고 “학생아 고맙데이~~ 살 것 같데이”라고 말씀하시는 주름진 얼굴에서 어린아이의 표정을 볼 때면 어느새 피로가 다 날아가 버리는 듯했다.

그렇게 스무 살 겨울 끝자락에 시작된 할머니들과의 만남은 5년간 이어졌고 20대 초반을 할머니들과 목욕탕에서 보냈던 시간들은 나에게 있어 어떻게 나이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방향을 제시해 준 귀하디귀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왜일까?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우리 아이들과 함께할 때면 어김없이 그 할머니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65세 이상이 참여하는 은총꾸르실료 봉사를 하고 있으면 내가 다시 20대로 돌아가 그 할머님들과 함께 하고 있는 생각이 들면서 그분들이 그리워 자꾸만 눈물을 흘리게 된다. 지금은 그분들의 얼굴이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정경만큼은 선명히 떠오른다. 세월이 흘러 생각해 보니 더 잘해 드릴 걸, 때를 더 밀어 달라며 오랜 시간 나를 붙잡고 있던 할머니에게 마음으로 짜증 내지 말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그때는 몰랐다. 할머니 한분 한분이 나에겐 하느님이었다는 것을. 그러기에 매일 밤 아버지와 조상들을 위한 연도를 바칠 때면 그분들도 함께 지향을 두고 기도하게 된다. 지나고 나니 이 모든 것은 주님의 이끄심이었음을 깨닫기에 오늘도 주님이 주신 이 하루가 우리 아기 천사들과의 마지막 날인 것 마냥 애틋하게 사랑을 속삭인다.




이성애 (소화데레사·꾸르실료 한국 협의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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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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