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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조종사의 병영일기] 아버지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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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강의 중에 발신자를 알 수 없는 전화가 와 받지 않았습니다. 강의 후 전화를 해야 하나 망설이다 통화 버튼을 눌렀습니다. 평소 왕래가 없던 친척이었습니다. 언제 만났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했지만 반가운 마음에 서로의 안부를 물었지요. 친척은 말미에 전화한 용건을 어렵사리 꺼냈습니다. 아들이 군에 갔는데 서울 가까운 곳으로 배치 받게 해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아들을 향한 사랑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전화를 했을까’라는 마음이 전해져 짠했습니다.

1985년 3월초, 소대장 보직을 마치자마자 공수부대로 차출 명령을 받았습니다. 전출 신고를 마치고 며칠간의 휴가를 얻어 고향을 찾았습니다. 당시 저의 몸은 형편없었습니다. 전출 일주일 전 철야 2박3일 200km 행군을 했기 때문입니다. 말이 200km 행군이지, 발바닥은 물집이 생겨 터지고 또 터져 너덜거렸고, 입술은 남 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부르터 헤졌습니다.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는데 입이 너무 아파 밥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맞은편에서 식사를 하시던 아버지가 슬며시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급한 용무가 있으신가 생각을 했었지요.

아버지는 휴가 내내 바쁜 농사일도 거들지 못하게 하시고 쉬게만 했습니다. 게다가 ‘군복은 내가 잘 다린다’면서 손수 주름을 잡아주셨지요. 귀대하는 날, 어머니께서 마을 어귀까지 배웅하시며 넌지시 말씀하셨습니다. “며칠 전 아버지가 너 밥 먹는 모습을 보다가 밖으로 나가셨잖아. 뒷바라지 잘 못해줘서 아들이 고생한다며 많이 우셨어. 너에게 우는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밖으로 나가신 거야. 그러니 건강 잘 챙겨야 해.” 그 말씀을 듣고 뒤돌아보니 아버지는 대문 앞에서 저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재로 덮인 화롯불은 겉보기에는 뜨거운지 잘 모릅니다. 재를 한 꺼풀 벗겨 봐야 시뻘건 불을 볼 수 있죠.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 이와 같지 않을까요. 짐짓 괜찮은 척, 모르는 척 행동하지만 속은 까맣게 타 들어갑니다. 자식들은 그런 아버지를 냉정하다고 혹평하지요. 아버지가 흘린 눈물방울은 통나무가 타들어갈 때 흘리는 진액과 같습니다. 가슴을 태우며 흘리는 진액이 바로 아버지의 눈물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마음 또한 같겠지요.

육군은 오래 전부터 부대 배치의 공정성을 위해 컴퓨터를 활용합니다. 사적인 개입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친척에게 부대 배치 시스템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도와줄 수 없다고 솔직하게 얘기했습니다. 지금은 씁쓸한 기분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막 이등병이 된 조카! 하느님을 믿는다 하니 신앙생활 열심히 하길 기대하며, 도와주지 못한 대신에 하느님께 간구합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 나약한 당신의 종에게 용기와 지혜를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연세(요셉)
예비역 육군 대령
동서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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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11-26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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