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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 두고온 자녀 그리며 희망의 만두 빚는다

[신년 기획] 희망을 여는 사람들 / 새터민 최창국ㆍ윤향순씨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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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 생활 9년차, 해주 왕만두를 파는 해주부용식품 대표 최창국ㆍ윤향순씨 부부는 오늘도 희망의 만두를 열심히 팔아 가족이 하나 되는 꿈을 꾼다. 이정훈 기자
 
 
   북한 황해도 옹진에서 무역회사를 운영하던 최창국(다니엘, 45)씨는 2005년 어느 날 자신이 일군 일터와 자녀를 두고 아내 윤향순(다니엘라, 42)씨와 중국행 무역선에 무작정 몸을 실었다. 북한 체제에 대한 환멸과 거기서 비롯된 말 못할 고통을 견디다 못한 최씨가 내린 가슴 아픈 결정이었다. 어딜 향하는지도 몰랐던 아내는 배가 항구에 닿고 잠에서 깬 뒤 그제야 자신이 탈북한 것을 알았다. 그날따라 전에 없이 보채던 5살ㆍ3살짜리 남매를 일흔이 다 된 시어머니 손에 떠맡기고 나온 길이었다. 이후 부부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올해로 9년째 힘겨운 남한생활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최씨 부부를 만나 이들이 꿈꾸는 새해 희망을 들었다.

 아내 윤씨는 "국정원과 하나원에서 수개월간 교육받고 나오니 저희 부부에게 주어진 건 10평 남짓한 20년 된 아파트뿐이었어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습니다. 북한에서 이보다 넓은 집에서 부족함 없이 살아온 저희가 고작 이것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며 가족을 두고 탈북한 건지 눈앞이 캄캄하기만 했죠"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남편 최씨는 "일한 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남한행을 택했지만, 이후 우리 부부는 생각지도 못한 고통의 나날을 보내게 됐다"고 말했다.

 최씨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는 일념으로 연세대 경영학과에 편입해 공부에 전념했고, 아내 윤씨는 지인에게서 빌린 500만 원으로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아내는 "390만 원에 산 트럭을 끌고 새벽 노량진수산시장에 달려가 생선을 사다가 거리에서 홀로 열심히 팔아 남편 학자금에 보태며 힘겨운 삶을 시작했다"면서 "차 사고에, 자리싸움까지 휘말려가며 악착같이 일해 조금씩 돈을 벌었다"고 말했다.

 이후 부부는 인천시 연수구 연수동의 한 상가에 정육점과 순댓국집을 차렸다. 자리를 잡나 싶었을 때쯤 바로 옆에 순댓국집이 하나 더 들어섰고, 매출은 크게 줄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매일 꼬박 장사만 해온 아내는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보름이나 병원 신세를 졌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자녀를 두고 온 죄책감을 떠안고 일에만 매달린 탓이었다. 이후 신부전증에 시달리게 된 윤씨는 매주 2~3차례씩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뜻대로 되지 않는 고달픈 삶 속에서 최씨 부부를 지탱해준 건 신앙이었다. 남한에 온 그해 이들을 보호감찰하던 경찰의 권유로 우연히 성당을 찾았고, 부부는 곧 세례를 받았다. 처음엔 `하느님이 어디 있겠어?`라고 생각했던 윤씨는 우연히 연수성당 마당의 성모상에 자신의 삶을 한탄하듯 털어놓으며 신앙의 힘을 알게 됐다.

 "속에 쌓인 응어리를 1시간 동안 풀고 나니 저도 모르게 후련해짐을 느꼈어요. 이후 답답한 마음만 들면 성모상을 찾아 푸념하니 정말 누군가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이후 윤씨는 3년간 성경통독반에도 참여하고, 레지오 마리애에 가입해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며 외롭고 고달픈 마음을 주님께 의탁했다. 인천교구가 운영하는 남동겨레하나센터(옛 새터민지원센터)에서 새터민들과 지내며 더욱 신앙을 키운 부부는 인천교구 민족화해위원장 오영호 신부 도움으로 남편 학자금도 지원받고, 성당을 통해 사업 판로도 개척하는 등 어려울 때마다 딛고 설 힘을 교회에서 얻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남편 최씨는 무역업을 했던 경험과 사업 수완으로 지난해 황해도 해주 왕만두를 만드는 `해주부용식품`을 차려 만두공장과 식당을 운영 중이다. 어느덧 월매출 6000~7000만 원에 이르는 작은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그럼에도 최씨 부부는 `희망`을 말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했다.

 아내 윤씨는 "10년 가까이 산전수전 다 겪고,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간다고 해도 그동안 한 번도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없다"며 "아이들을 데려올 수 있도록 늘 기도하지만, 제 기도는 여전히 부족한가보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최씨 부부가 만드는 만두는 이들에게 희망 그 자체다. 만두는 부부가 지금껏 겪은 말 못할 어려움과 고통으로 빚어낸 값진 결과물이자, 오랫동안 엄마 품을 잊고 자란 자녀를 데려올 희망의 매개체다.

 "어떻게든 우리 만두를 잘 판매해서 전 국민이 사랑하는 명품 식품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작은 만두가 가져올 희망은 이제 시작입니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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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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