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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구·조명혜 부부의 펜화 성지순례] 41. 함흥교구 고원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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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원에서 북쪽으로 45㎞, 영흥에서 20㎞ 떨어진 함경남도 고흥에 1933년 11월 성당이 세워졌다. 커다란 아치형 입구가 세 개 있고, 책을 엎어놓은 듯한 박공지붕이 놓인 성당이 언덕 위에 그림처럼 자리를 잡았다. 당시로는 지역 유일의 벽돌 건축물인 이 성당은 금장고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소가 됐다. 장날이면 성당을 구경하기 위해 시골 사람들로 붐볐다.

덕원수도원 카예타노 신부가 설계한 고원성당은 한국의 아름다운 기와지붕과 유럽 성당 형태를 절충한 건축물이었다. 이 성당에 1936년 3월에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에서 종 3개가 도착해 종탑에 설치됐다.

종이 설치되던 날 본당 주임 엘리지오 신부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종이 처음 울리던 날은 도시에 큰 사건이 일어난 것 같았다. 사람들이 집 밖으로 뛰쳐나오거나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 두리번거리며 종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성당은 그렇지 않아도 도시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어서 눈에 잘 띄었다. 그럼에도 성당을 못 보고 지나치는 사람이 있다면 이제 날마다 종소리가 우리 주 하느님께서 사시는 곳을 알려 줄 것이다.”

고원성당은 부속 학교로도 유명하다. 사제관 옆에 지은 학교엔 3개 학년에 260여 명의 학생이 공부했다. 주일이면 사람들이 이 학교에 모여들어 교리를 배웠다.

엘리지오 신부에 이어 부임한 볼프라모 피셔 신부는 고원본당에 작은 음악학교를 세웠고, 새로 만든 곡으로 「가톨릭성가」를 편찬했다. 이 성가집에는 한국어 성가 200곡이 수록돼 있고 부록으로 라틴어 성가도 실렸다. 이 성가집은 한국에서 모든 것을 일본화하고 한글을 말살하려던 시기에 성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일제의 방침을 거스르며 한국교회를 돕는 데 헌신했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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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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