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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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알몸으로 거리 떠돌던 소녀, 안식처 찾다

방글라데시 꽃동네 <1> 안정현 수녀(예수의 꽃동네 방글라데시 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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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꽃동네 <1> 안정현 수녀(예수의 꽃동네 방글라데시 분원)

▲ 버스나 승용차를 가리지 않고 뒤엉킨 교통체증이 다반사인 다카 시내 거리.

방글라데시 꽃동네에서 소임을 맡고 있던 후배 수녀가 건강 문제로 급히 귀국했다. 그래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로 가야 했다. 서울에서 홍콩을 거쳐 거의 온종일 걸려 도착한 다카공항을 빠져나오려니, 아무리 봐도 공항 같지가 않다. 마치 한국의 시골 정거장 같이 비좁은 공항에 화장실은 하나뿐이고, 그 문 앞에 사람이 서서 화장지를 두 칸씩 떼준다. 걸인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막아 놓은 철망에는 한쪽 팔, 다리가 없는 장애인과 걸인이 두 겹, 세 겹 매달려 돈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그 공항 철망 사이로 총을 든 군인들이 왔다 갔다 하며 경계한다.

 

거리에는 걸인이 넘치고

공항을 출발했지만, 후텁지근한 날씨에도 창문을 열 수가 없다. 차를 타고 가다가 잠시라도 서기만 하면, 걸인들이 몰려와 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기 때문이다. 한 푼이라도 돈을 주면, 삽시간에 수많은 걸인이 몰려들어 차를 흔들며 자신에게도 돈을 달라고 외치기 때문에 문을 열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창문을 열지 않고 무더위를 견디며 공항에서 다카 근교 파라텍에 있는 꽃동네까지 세 시간이나 걸려 도착했다.

40분이면 도착할 길을 네 배도 넘게 걸려 도착할 정도니 교통 사정은 최악이다. 신호등은 찾아보려야 볼 수도 없고 차선이 있는지 궁금할 만큼 역주행도 많다. 운전도 얼마나 거칠고 험한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만 같다.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서로 다른 경적 소리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여기 사람들은 모든 게 느린 데 빠른 게 딱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운전할 때와 돈 받으러 올 때”라고 한 교민이 귀띔해준다. 어렵게 다카 외곽 파라텍 꽃동네에 도착해 짐을 풀고 잠자리에 누우니 만감이 교차한다. 내가 이곳에서 살아가야 하는구나, 공항에 내려 밤늦게 겪은 몇 시간이 무척이나 길고 암울했다.

▲ 방글라데시 인구의 종교 분포도


방글라데시는 이슬람 국가다. 1억 6000만 명에 이르는 인구 중 이슬람교도가 86로 가장 많고, 힌두교도가 11, 소수의 불교도와 3의 그리스도인이 있다. 이 통계도 믿을 수는 없다. 통계 대부분이 수시로 다르게 발표되니, 신뢰도가 별로 높지 않다. 경제는 전체 60를 원조에 의존한다. 이곳 사람들은 도둑질이나 거짓말, 구걸에 죄의식이나 양심의 거리낌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 신이 우리를 위해 준비해 둔 것을 내가 조금 가져왔을 뿐인데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교통이 복잡한 시내에서 차가 멈춰 서 있으면, 불쑥 코끼리가 등에 사람을 태우고 비집고 들어와 돈을 요구한다. 안 주면 차를 밀치는 등의 행동을 한다. 교외 도로에서도 코끼리가 지나가는 차를 세우고 돈을 요구한다. 주지 않을 도리가 없다.

▲ 정체된 차 사이로 느닷없이 코끼리 탄 사람이 비집고 들어와 자동차 앞으로 가서 돈을 요구한다.

사회적 약자 여성, 더 소외받는 장애인

종신서원을 한 지 10년 만에 오게 된 방글라데시에서 우리 수도회의 영성을 느끼기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난하고 병들었지만 의지할 곳 없고 얻어먹을 힘조차 없는 사람들’과 함 께 울고 함께 웃으면서였다. 방글라데시에는 정말 가난한 사람들이 넘쳐 난다. 여자는 사람 취급도 안 한다. 장애인도 죄인 취급한다. 때로는 화가 치밀기도 하지만, 이슬람과 힌두 세계의 워낙 오래된 문화이기에 어찌할 방법이 없다.

▲ 방글라데시 꽃동네 희망의 집 가족들과 함께한 안정현 수녀.

‘쉬마’도 그런 문화의 희생자 중 하나다. 쉬마는 내가 간호사로 사도직을 하는 희망의 집에서 함께 산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인지, 못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열댓 살 정도의 소녀다. 나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건 진료하는 의사마다 열다섯 살에서 스물다섯 살까지 다양하게 추정하기 때문이다. 미소가 예쁜 이 소녀는 방글라데시 북부의 지방 소도시 마이멘싱의 까찌줄리 거리를 알몸으로 돌아다니며 음식을 주워 먹고 이상한 짓을 해 꽃동네로 오게 된 아이다. 정신연령은 아직 유아기이지만, 거리에서 얼마나 많은 성폭행과 폭력에 시달렸는지, 몸은 세상의 온갖 풍파를 다 겪었다.

맨 처음 꽃동네에 들어왔을 때 쉬마는 사람들을 피하며 혼자 있으려고만 했다. 사람들이 다가가면 공격적인 행동을 해 심신 상태가 불안정해 보였다. 누가 쳐다보기만 해도 두려운 듯 구석에서 혼자 웅크렸다. 어떻게든 친해져 보려고 손을 내밀었지만, 스치기만 해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뛰쳐나가 돌을 집어들고 온몸을 떨며 서 있곤 했다. 더 가슴 아픈 건 거리에서 당한 성폭력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육체에 눈을 뜨게 됐고 집착하게 됐다는 점이었다. 특히 육체적인 자극이 오면,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몸과 마음이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하곤 했다. 쉬마라는 이름도 자신의 이름은 아닌 듯했다. ‘끝’이라는 뜻의 이름을 주변에서 불러 이름이 된 듯했다.

정신과 치료를 시작하며 쉬마는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말을 가르쳤는데, 알아듣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닌 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스터라고 부르면 언제든지 와서 도와줄게”라는 말을 반복했더니, 어느 날 “시스터!”하고 우리를 불러 감격하게 하기도 했다. 용변이 급하면 그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기도 하고, 화장실에 데려가서 변기에 앉혀 놓으면 데리러 올 때까지 앉아 있는 아이이기도 하다. 바지를 주고 입으라고 하면 머리에 넣고 울던 아이가 요즘은 조금씩 변화되며 사람을 가까이하기 시작했다. 부르면 도망가고, 안으면 물고 꼬집던 아이가 이제는 안기는 걸 좋아하고 기도실에 가면 우리 무릎을 베고 누우려고 한다. 한국말로 “미안하다”고 하면 금방 알아듣는다. 지금은 보라색을 유난히도 좋아하는 눈이 큰 소녀가 된 쉬마에게 바쁘다는 핑계로 좀더 손길을 주지 못하는 게 미안할 뿐이다.

일과를 마무리하며 경당에 앉아 기도하다 보면 오늘도 어느새 전기가 나간다. 천장에 매달려 힘겹게 돌던 선풍기도 조금 쉬라고 하는가 보다 하고 생각할 때쯤이면 땀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계속해서 달려드는 모기는 이제 만성이 돼서 잘 느끼지도 못한다.

오늘도 나는 기도를 바친다. “주님, 방글라데시의 가난하고 병들고 지친, 이 많은 사람을 다 구할 수는 없지만, 한 영혼이라도 진정 예수 성심의 사랑으로 구원하는 일에 작은 도구가 될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소서. 아멘.” <계속>

 

도움 주실 분

(예수의 꽃동네 자매회 방글라데시 분원) 우리은행(다카지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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