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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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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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당 측과 화해한 뒤 광장에서 미사를 드리는 마을 사람들.

▲ 볼리비아 지도. 붉게 표시된 곳이 김효진 수녀가 사목 중인 엘 알토 지역.

▲ 성당 건물을 뺏기 위해 만든 화장실. 사진은 마을 사람들이 성당 측에 사과한 후 화장실을 철거하는 모습. 김효진 수녀 제공







제가 사는 볼리비아 알토 동네는 모든 것이 아주 느리게 흘러갑니다. 5년 전 아스팔트를 깐다길래 우리 동네도 이제 좀 좋아지겠구나 싶었는데 여전히 땅 고르는 일만 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자연환경은 척박하고 황량하고 추워서 아무것도 자라지 않습니다.

해발 4000m가 넘는 고지대다 보니 안데스의 눈 덮인 산바람은 늘 건조하고 매섭습니다. 이러한 환경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기 때문인지 사람들의 마음은 메말라 있고 표정은 딱딱하고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보다는 무조건 배척하고 경계하며 폭력적입니다.



박해의 소용돌이 속으로

원주민 출신으로는 처음 에보 모랄레스가 볼리비아 대통령이 되자 알토 원주민은 가톨릭을 박해하고 수도원을 몰아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파장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이 마을에 왔지요. 마을 사람들 시선은 곱지 않았고, 가뜩이나 외국인에게 적대적인 이곳 사람들에게 우리는 그들 땅을 차지하고 있는 눈엣가시로 여겨졌습니다.

더군다나 마을 대표들은 우리를 몰아내고 성당과 교육관 건물을 차지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성당 철문에는 벌써 수차례 경고장이 붙었고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불려가 상황을 해명해야 했습니다. 이들은 성당 앞마당과 교리실, 수녀원 마당까지 야금야금 빼앗아 갔습니다.

예전에는 교구에서 마을 땅에다가 교회를 짓고 건물을 지었는데 그때는 서류도 없었고 관례처럼 서로 말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그것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건물과 땅을 빼앗는다고 해도 원주민들은 운영하고 유지할 능력이 없어서 다시 폐허가 되고 마는데도 마을 사람들은 우선은 차지하고 보려는 욕심 때문에 여러 가지 방법을 쓰고 있는 것이지요.

결국 교구가 나섰습니다. 교구 총대리 신부와 교구청 변호사가 이곳을 방문해서 “성마태오 성당과 교육관을 분리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던 마을 대표에게 교구의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 동네에 다시는 사제를 파견하지 않을 것이고 사람이 죽어도 기도와 미사도 없이 그냥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강하게 말씀하셨지요. 위령 미사와 장례 미사를 중요하게 여기는 원주민들에게 최후통첩을 한 것입니다.



큰 대가를 치른 뒤 손 내민 사람들

교구의 강경한 입장 표명에도 말을 듣지 않던 마을의 대표들이 그동안 성당을 가리고 있던 마을 화장실을 철거했습니다. 이들이 성당 앞에 화장실을 지었던 이유는 성당 건물과 교육관을 통째로 빼앗기 위해서였는데 화장실을 철거하는 이유는 얼마 전 이 화장실 뒤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오랜 원한에 의한 살인 사건이었고 그 자리에서 두 명이 죽고 한 명은 칼에 찔린 채 실려 갔습니다.

결국 화장실이 성당을 가리고 있어서 우범 지역이 됐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의 원성을 사게 되었고 그제야 마을 대표들이 미사 신청을 하고 가톨릭과 화해를 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불목했던 관계가 돌아서게 된 것이지요. 이들은 살인 사건이라는 큰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오랜 고집과 욕심을 꺾었습니다. 미사를 드린 뒤 마을 대표들은 “그동안 우리가 아주 나빠서 미안했다”며 악수를 청하고 돌아갔습니다.



사랑과 용서, 화해를 향하여

하느님께서는 전능하시지만, 사람의 마음을 바꿔 놓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마음이 돌아서고 화해를 하기까지의 시간을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인내하고 기다리셨을까요?

가장 큰 기적은 바로 ‘사람의 마음’이 바뀌는 일이겠지요. 집착과 욕심을 내려놓고 생명의 길, 사랑의 길, 하느님과 함께 걷는 길로 돌아서는 일이야말로 눈으로 직접 기적을 보는 일입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박해를 각오하여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라고 하신 선교의 스승이신 예수께서는 선교지의 삶이 어떨지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또한 원주민들이 이렇다는 것은 바로 이들이 배척당했고 착취당했고 보장받지 못했고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했고 교육받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더욱 이들의 참된 이웃이 돼줘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특징은 사랑과 용서, 화해와 일치, 섬김과 나눔, 희생과 봉사입니다.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께서 그 가르침을 주셨고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그분을 본받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머금고 소외된 이들을 대하며 형제적 친교의 매력적인 증인이 돼야 합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가난한 이들 가운데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날마다 간절히….

<계속>



도움 주실 분 : 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시티은행 622-00044-252-01

(김효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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