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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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이 펄펄 나고 눈이 충혈돼도 꾹 참는 아이들

볼리비아 <2> 김효진 수녀(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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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2> 김효진 수녀(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 아이들 얼굴에 그림을 그려주는 김효진 수녀.



익숙한 곳, 추억이 가득한 삶의 자리를 두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떠난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무리한 요구입니다. 그런데 많은 신앙의 선조들께서 “떠나라!” 하시는 하느님의 이 한 말씀으로 고향을 떠났고 가족을 떠났지요. 하느님의 크신 계획을 알지 못한 채 믿음 하나로 ‘있던 곳’을 떠나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더욱더 가까이 주님만을 의지해야 하는 환경으로 들어간다는 말도 됩니다.

그렇게 떠나온 이곳 지구 반대편 볼리비아 알토 원주민들과 오늘도 정을 나누고 신앙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은 척박한 오지마을이면서도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도시 빈민촌입니다. 이곳은 특히 아이들 인구가 많은 곳입니다. 저희는 작은 본당과 공부방 사도직을 하며 매일 아이들을 만나고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 음식 나눔에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아이마라 원주민들. 김효진 수녀 제공



웃음 가득한 체육대회

공부방 체육대회 날이 되어 엄마들과 아이들이 두 팀으로 나누어 물건 빨리 가져오기 게임을 했는데 ‘캉캉치마 가져오기’에 엄마들이 빛의 속도로 훌러덩 치마를 벗어주고 나니 속에 또 다른 치마가 나오는데 원주민 여성의 전통 치마는 일곱 벌 정도를 껴입기 때문에 굉장히 풍만해 보이는 특징이 있습니다.

다음은 ‘댕기 가져오기’인데 말이 끝나자마자 땋은 머리가 풀어져도 댕기를 잡아 빼서 이기겠다는 집념의 엄마들 덕분에 저는 배꼽을 잡고 맙니다. 감자 깎기 대회에서는 순위를 다투며 감자를 깎는데 솜씨가 세계 최고입니다. 1등 엄마에게는 선물로 치약 한 개가 돌아갔습니다. 이번에는 모두가 빙 둘러앉아 목도리 둘러주기 게임을 하는데 바지에 구멍을 냈다며 아들을 쥐어박던 케빈 엄마가 오늘만큼은 다정하게 목도리 둘러주며 얼굴에 웃음이 가득합니다.

체육대회가 모두 끝나고 마지막으로 ‘Athapi’(음식 나눔) 시간은 우리 아이들이 제일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아이마라 원주민들은 음식 나눔에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민족입니다. 감자 한 알이라도 준비해 와서 펼쳐 놓고 나누어 먹는 이들만의 음식 문화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상을 마련하고 그 위에 천을 깔아 놓으니 가져온 음식을 조심스레 펼칩니다.

이들이 준비해 온 음식은 온통 감자뿐입니다. 구운 감자, 튀긴 감자, 찐 감자, 썩힌 감자, 말린 감자, 부친 감자 등 재료는 감자 하나지만 다양한 요리가 됩니다. 해발 4000m가 넘는 안데스 고원의 감자는 생크림처럼 부드럽고 또 단단해서 맛이 좋습니다.

▲ ‘댕기 가져오기 게임’을 하기 위해 머리를 땋고 있는 알토의 원주민 여성.



어리광을 부리지 않는 아이들


저는 갈 곳 없는 가난한 아이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시작하니 이루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셨습니다. 이번 어린이날에는 아이들 얼굴에 신나게 낙서를 해줬습니다. 별, 꽃, 나비, 사랑 등을 그려 달라고 하는데 누구는 해주고 누구는 안 해줄 수 없어서 60명의 아이 얼굴에 모두 그려 줬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특성 중 하나는 절대 어리광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끔은 애 늙은이 같은 모습에 깜짝 놀라곤 합니다. 아이들 챙겨주다가 교사들한테 한소리 듣기도 합니다. 스스로 하는 게 이곳의 관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뭐든 들어주는 수녀님들 때문에 자신들이 나쁜 교사가 된다며 볼멘소리를 합니다. 초콜릿 과자를 줬더니 반만 먹고 주머니에 넣으며 “집에 가서 동생 줘야지” 하는 데닐슨에게 몰래 한 봉지 더 줬더니 데닐슨이 씩~ 웃으며 우리 둘 사이에 비밀이 생겼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더 챙겨주고 싶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약간 모자라고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행동이 느리고 눈치 많이 보고 슬픈 눈망울의 아이들이 그렇습니다. 관심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챙기는 게 이제는 저의 몫이 됐습니다.

처음 공부방에 왔을 때는 무표정했던 아이들이 가르치는 그대로 조금씩 변화돼 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서 가능성과 희망을 보게 됩니다.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줌으로써 타인을 배려하고 양보할 줄 아는 사람, 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게 보살피는 것이 이곳에서 저희의 소명입니다.

우리 아이 중에는 초등학교 3~4학년인데도 스페인어를 못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가정에서는 아이마라 원주민 언어를 쓰기 때문에 스페인어를 배우지 못했다가 학교에 들어가서부터 스페인어를 쓰기 때문입니다. 볼리비아에서 스페인어를 못한다는 것은 사회에서 점점 더 낙오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돌아다니며 말 안 듣는 아이들에게 교사 제니가 “계속 돌아다니면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린다”며 무서운 표정을 짓습니다. 그런데 “자꾸 떠들면 스테이플러로 입을 콕 찍어 주겠다”고 하고 “모래주머니처럼 공중에 매달아버리겠다”는 말을 서슴지 않습니다. 유치반 교사는 “자꾸 울면 개떼들에게 던져버릴 거야”라고 말합니다.

▲ 아이들과 함께 한 필자(아래).



생전 처음 듣는 이런 말에 저는 놀라서 기절할 지경이지만 이 정도의 협박에 우리 아이들은 들은 척도 안 한다는 것에 한 번 더 놀랍니다. 집에서는 더한 언어폭력에 시달리기에 이 정도는 그저 거짓말인 줄 다 압니다. 이 아이들이 지금은 교리를 받고 세례를 받고 가톨릭 신앙인으로 조금씩 예수님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아직은 간식의 힘이 크지만 주일마다 미사에 나와 성가를 배우고 말씀을 듣습니다.

아이들은 주면 줄수록 변화되고 사랑을 주면 줄수록 자신의 환경을 극복하고 잘 자랄 수 있습니다. 먼저 좋아해 주고 마음을 여는 쪽은 늘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순수하고 맑으니까요.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이런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들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고 배움의 기회를 주고 함께 놀아주며 가난한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매료되어 내 것을 버리고 이웃과 함께 사랑하는 친구의 삶을 살아가다 보면 오히려 제가 더 풍요로워짐을 발견합니다.

이곳은 산악 고원 지역으로 해가 쨍쨍했다가도 먹구름이 몰려오고 흙바람이 거세게 불었다가 천둥 벼락이 무섭게 내리치고 우박이 쏟아졌다가도 금방 말라버립니다. 이렇게 하루에도 12번씩 계절이 바뀌곤 합니다. 더군다나 요즘은 오랜 건기가 끝나가는 환절기라 우리 아이들 기침 소리가 심상치 않습니다. 열이 펄펄 나고 다래끼로 눈이 심하게 충혈돼 서로 옮기고 있습니다. 아파도 그냥 참아내는 아이들이라 걱정이 많이 되는 요즘입니다. <계속>



도움 주실 분 : 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시티은행 622-00044-252-01

(김효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6-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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