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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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슬플 땐 단 게 최고? 사탕 뿌려 죽은 이의 영혼 달래

볼리비아 <3> 김효진 수녀(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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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3> 김효진 수녀(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 위령 축제 기간에 아이들이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과일은 세상을 떠난 이들이 좋아하던 것이다.

▲ 라우라네 집에서 함께 빵을 만들고 있는 필자.

▲ 방금 구운 빵.



유난히 시리도록 파란 오늘은 하늘이 열리는 날입니다. 모든 성인께서 새 식구를 마중 나오시는 듯 청명한 이날 우리 신자들은 꽃과 초를 들고 미사를 봉헌하며 한 명 한 명 돌아가신 가족, 친지의 이름이 불리기를 귀를 세우며 기다립니다.

매년 11월 1일 자정부터 다음날 자정까지 24시간 동안 하늘의 문이 열린다고 믿기 때문에 이 시간에 맞춰서 죽은이의 영혼들이 하늘나라에 무사히 들어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살아있는 이들이 정성껏 준비해야 합니다.

원주민들은 정성을 다해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을 꼼꼼히 챙깁니다. 이들의 예식을 보면 마치 우리가 추석 명절에 조상을 기리고 제사를 지내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들은 기도해 주는 일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여깁니다.



말 인형 제사상에 올려

죽은이의 영혼들이 하늘로 가는 길은 쉬운 일이 아니고 고된 여정이기 때문에 먼저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양파에 물을 담아 준비하고 또한 영혼의 세계에는 자동차가 없기에 이 모든 짐을 싣기 위해서는 말이 필요합니다. 물론 상징적인 말 인형을 제사상에 올립니다.

그러고는 하늘로 가야 하는 영혼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슬프니 슬픔을 달래려면 ‘단’ 사탕이 필요하다며 군데군데 사탕을 뿌립니다. 제사상 밑에 밀가루를 뿌려 두면 영혼이 왔다 간 발자국을 남긴다고 믿기 때문에 밀가루도 필수입니다. 사탕수수를 제사상 네 귀퉁이에 매다는데 이는 영혼이 먼 길을 가는데 의지하는 지팡이를 상징합니다. 이 밖에도 평소 죽은 이들이 생전에 좋아하던 과일이나 음식을 준비합니다.

조상에 대한 애틋한 마음의 표현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입니다. 이렇게 가정에서 영혼을 위한 모든 일을 마치고 성당에 와서 미사를 드리고 제대 밑에 놓았던 꽃과 영정사진을 모시고 묘지로 향합니다. 이들의 예식을 지켜보면 죽음도 탄생처럼 똑같은 축복임을 알게 됩니다.

위령 축제의 기간에는 우리 아이들이 제일 즐겁습니다. 제사 음식이 푸짐하기 때문이지요. 제사상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탕, 과자, 과일들이 쌓여 있습니다. 이것을 먹는 즐거움이 너무나 커서 우리 아이들은 대축일 미사와 제사 의식의 긴 시간을 잘도 참아냅니다.

저희 성 마태오 성당 공부방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위령의 날 축제를 지냈습니다. 조상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에 우리 아이들은 사뭇 진지하게 손을 모으고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며 이들이 하느님 품에 무사히 도착하여 행복하기를 기도합니다.

위령 기간, 빵굽는 기계도 멈춰

복음을 충실하게 전하려면 이 문화에 스며든 많은 것들을 알아야 합니다. 이들의 문화 안에 깊이 스며 있는 전통 방식이 때로는 낯설고 의구심이 들고, 가톨릭 교리와는 맞지 않아 당황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먼저 이들의 문화와 전통, 역사를 배우고 존중하며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때 하느님께서도 함께 활동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입가에 웃음이 가득해서 막 구운 빵을 맛보라며 집집이 아이들이 가져온 빵을 모으니 제각각 맛도 모양도 다른 빵 잔치가 벌어집니다. 빵 5개로 5000명을 먹이신 기적의 순간이 현실이 되는 이러한 나눔은 모두가 풍요로워지는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이렇게 빵을 많이 만드는 이유는 위령 기간에는 어디에서도 빵을 구할 수 없고 빵을 굽는 기계도 쉬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라우라는 축제 기간에 우리가 고향을 생각하며 외롭게 지낼까 걱정해 함께 빵을 만들자고 우리를 초대했습니다. 전에도 몇 번 라우라네 집에 가봤지만 마당에서만 이야기하고 돌아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집에 들어가 사는 모습을 보니 한 번도 청소를 안 한 게 분명한 바닥과 천으로 덮은 낡은 소파와 테이블이 보였습니다.



뜻밖의 초대

가족과 친척이 아니면 손님을 집에 들이지 않는 이들의 배타적인 사고방식을 생각할 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냉랭한 기운과 신자들조차 “너희는 언제 고국으로 돌아가느냐?”고 물었던 그 이유를 이제는 압니다. 조금씩 서로를 알고 이제 막 마음을 열고 다가오려고 할 때 선교사들이 떠나 버리기 때문에 이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요.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마르 9, 41).



그저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주시는 상이 있다는 것은 기쁜 소식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받아들임은 존재를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단순히 이들이 나를 받아들임이 아니라 나 또한 이들의 삶을 받아들이고 정을 나누고 정말로 마음을 주어야 하는 상호관계 안에서 이뤄지는 보이지 않는 기적입니다.

집집이 빵 굽는 기계가 없기에 새벽 3시부터 기계 앞에서 줄을 서서 밀가루를 맡깁니다. 우리가 방앗간에 쌀을 맡기고 떡을 하는 것과 비슷한 풍경을 이곳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땜질해 만든 커다란 오븐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혹시 가스가 터지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을 참고 이들의 축제 준비를 돕는 것은 새로운 체험이며, 이들 삶 안으로 한 발 가까이 들어서는 모험이기도 합니다.



서로 안에서 하느님 찾기

이들 문화 속에서 이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좀 더 보이기 시작하고, 이들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이들도 내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게 되면 우리는 서로를 통해 하느님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이 여정의 동반자로 함께 하시곤 합니다.

선교지에서 제가 하는 일이라고는 주님을 찾고 주님께 의탁하며 원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을, 당신 자애에 희망을 두는 이들을 좋아하신다”(시편 147,10).

불안한 마음에 인간적인 힘을 기르기 시작하면 그 힘에 의지하게 되고 모든 것이 그 힘으로 결정된다고 여기게 됩니다. 자신의 힘으로 이룬 것은 하느님과 관계가 없습니다.

위령 성월을 지내면서 우리도 돌아가신 조상들을 위해 마음 모아 기도하며 불쌍한 연옥 영혼들과 낙태된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모든 성인의 전구를 청할 때입니다.

도움 주실 분 : 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시티은행 622-00044-252-01

(김효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6-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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