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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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품 성구와 나]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

"그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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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또 많은 사람들이 뒤따라 왔으므로 예수께서는 모든 병자를 고쳐 주시고, 당신을 남에게 알리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하셨다. 그리하여 예언자 이사야를 시켜 `보라, 내가 택한 나의 종, 내 사랑하는 사람, 내 마음에 드는 사람, 그에게 내 성령을 부어주리니 그는 이방인들에게 정의를 선포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않고 큰 소리도 내지 않으리니 거리에서 그의 소리를 들을 자 없으리라. 그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리라. 드디어 그는 정의를 승리로 이끌어가리니 이방인들이 그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마태 12,15-21).

 사제품을 앞두었을 때 제 마음에 꽂힌 성서 대목은 이것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준비한 사제직이 막상 코앞으로 다가오자 기쁨보다는 겁이 더 났고, 남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생각보다는 자신이 이 길을 끝까지 잘 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더 무겁게 엄습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저에게 이 말씀은 무엇보다 빛과 힘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대목에서도 꼭지 구실을 한다고 생각되던 한 마디를 사제 수품 성구로 선택했습니다. "그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리라." 이런 분이 아니고서는 남을 돕기는커녕 제 한 몸을 이끌고 가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나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마르 14,36).

 이 말씀에서도 그 꼭지 구실을 하는 말씀을 주교 수품 성구로 택했습니다.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주교품을 받게 되었을 때 머리에 떠오른 이 성서 말씀도 이제 돌아보니 사제품을 앞두었을 때와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제생활 21년이 되던 해(1990년)에 주교가 된다고 생각하니 제일 겁나는 것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자주 사제직에 충실하지 못하고 자신의 욕망 쪽으로 기울었던가!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면 그것은 자신과 교회, 그리고 세상에 큰 불행이 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떠오른 것이 이 말씀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전쟁 중에 있지만, 성서에 나타난 수많은 신앙 영웅들의 증언과 하느님 말씀은 언제나 빛과 힘이 됩니다. 그래서 파라오의 막강한 군대를 수장시키고 바다 한가운데를 마른 발로 건너고, 사막을 가로질러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한 모세와 백전노장 골리앗을 이긴 소년 다윗의 그림이 늘 마음속에 살아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시어 하늘에 오르신 다음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심으로써 갈대 같은 인간에게 하늘의 능력을 부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진리가 세월과 함께 점점 더 제 안에 생생히 살아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분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기적이 따르게 될 것인데 내 이름으로 마귀도 쫓아내고 여러 가지 기이한 언어로 말도 하고 뱀을 쥐거나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을 것이며 또 병자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마르 16,17-18).

 현세에서 그리스도 신앙인은 땅을 딛고 하늘을 보며 사는 존재로서의 자의식이 특별히 예민한 인간입니다. 아래로 땅을 보면 그것을 딛고 있는 자신의 나약성 앞에 현기증을 느낄 수밖에 없고, 첫 순교자 스테파노처럼 시선을 위로 "하늘에 고정시켜 놓고 보면"(사도 7,55 참조) 어떤 두려움도 사라집니다. 주님의 승리가 내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겠지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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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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