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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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속의 신문] 한국천주교회사(1)- 가성직 제도 전면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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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0년
평신도들이 신부를 자청해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베풀던 일명 ‘가성직 제 도’가 독성죄에 해당하기에 이를 폐지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1789년말 가성직제도의 적법성을 문의하러 동지사편으로 북경을 방문해
1790년 봄에 귀국한 윤유일은 “천주교회의 선교사들에게서 ‘가성직제도는 신 을 모독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기에 이를 폐지하고 그 대신 사제를 영입하는 확 실한 방법을 강구하라’는 내용의 답신을 받아왔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승훈을 비롯한 천주교회 지도자들은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하고
북경 선교사들의 권고를 따라 북경으로부터 사제를 영입하는 운동을 전개하기 로 하는 한편 이같은 결정을 알리기 위해 윤유일을 재차 북경으로 파견하기로
했다.
가성직제도가 적법성 논란을 빚기 시작한 것은 유항검이 성사의 유효성에
의혹을 제기하면서부터다. 이승훈으로부터 신부로 임명돼 성사를 집전하던 유항 검은 ‘성교절요’로 추정되는 교리서를 숙독하던중 현재 조선땅에서 10여명의
평신도가 ‘신부 행세’를 하는 것은 독성죄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즉 시 이승훈을 비롯한 교회지도자에게 알리면서 가성직제도 폐지를 촉구했다.
이에 따라 교회지도자들은 가성직제도를 일단 중단하고 북경의 선교사들에 게 밀사를 보내 필요한 지시를 얻기 위해 1789년말 윤유일을 북경으로 파견했 다.
가성직제도가 생기게 된 도화선은 1785년 김범우의 집에서 열린 종교집회가
정부에 발각되면서 일어난 ‘을사추조적발사건’이다. 이 사건 이후 정부의 탄 압은 계속됐으나 천주교인들의 사기는 오히려 충천돼 자신의 신앙을 심화시키 는 동시에 외교인들의 개종을 촉진하려는 의도에서 이승훈을 비롯한 지도자들 이 모여 ‘가성직제도’를 세운 것이다.
1786년 교회지도자들이 모여 이승훈에게 미사와 견진성사를 집전할 권한을
부여하면서 시작된 가성직제도는 불과 시행 2∼3년만에 전면 폐지되었지만 결 과적으로 초기 조선 교회 신자들의 신앙을 심화하고 복음전파에 일조했다는 데
그 가치가 있다.【박주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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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1999-12-05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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