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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림동본당, 이현종 신부·서봉구 형제 70주기 추모 미사

한국전쟁 당시 성당 지키다 인민군에 순교…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시복 예비심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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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교구 도림동본당은 3일 이현종 신부와 서봉구의 70주기 추모미사를 봉헌하고, 두 순교자의 넋을 기렸다. 미사 후 최희수 주임 신부를 비롯한 신자들이 이현종 신부 순교터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 이현종 신부

▲ 서봉구



서울대교구 도림동본당(주임 최희수 신부)은 3일 70년 전, 6ㆍ25 전쟁 당시 성당을 지키다 북한군에게 총살당한 이현종(야고보, 1922~1950) 신부와 서봉구(마리노, 1926~1950)의 70주기 추모 미사를 봉헌했다.

최희수 주임 신부는 미사 강론에서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 상황에서 이현종 신부님과 서봉구 형제님은 성당을 지키기 위해 성당에 끝까지 남아 있다가 인민군에게 순교를 당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최 신부는 “오늘날 우리도 이런 순교정신을 항상 기억하면서 우리 각자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들이 있다면 기꺼이 지고 갈 수 있도록 다짐하자”고 강조했다.

도림동본당 신자들은 추모 미사 후 이현종 신부와 서봉구 형제의 시복 시성 기도문을 바친 후, 순교기념관을 둘러보며 두 사람의 순교 정신을 기렸다. 코로나19로 70주기 추모 미사는 간소하게 진행했다. 미사에는 본당 신자들을 비롯해 7ㆍ3회 회원들, 이현종 신부의 사촌 동생 부인 김응숙(마르타)씨 등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난 이현종 신부는 1950년 사제품을 받았다. 4월 도림동본당 보좌로 첫 발령을 받았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해 광명리 공소로 피신했다. 그러나 이 신부는 피난길에서 돌아와 성당을 지켰다. 피난을 떠나지 못한 신자들을 돌보다 아침 미사를 마친 뒤 들이닥친 인민군에게 피살당했다. 인민군이 이 신부에게 “너는 무엇하는 사람이냐”고 물었고, 이 신부는 “나는 이 성당 신부요”라고 답했다. 인민군은 이 신부 가슴에 총을 한 발 쐈고, 쓰러진 이 신부는 “나를 죽이는 게 그렇게 원이라면 마저 쏘아라. 너희가 내 육신을 죽일 순 있어도 영혼은 빼앗아 갈 수 없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사제생활 79일 만에 이 신부는 순교했다.

서봉구 형제는 이 신부를 지키다 함께 순교했다. 강원도 횡성에서 태어나 5살에 버려져, 횡성에 있는 보육원에서 컸고, 1931년 세례를 받았다. 16살에 도림동본당 2대 주임 정원진 신부가 성당에 데려왔다. 그는 삼종을 치며 성당의 궂은일을 도맡았다. 순교할 당시 두 사람의 나이는 28, 24살이었다.

도림동본당은 이현종 신부와 서봉구의 형제의 삶을 기념하기 위해 2018년 8월 순교기념관을 건립해 추모사업을 벌여왔다. 이현종 기념사업회인 7ㆍ3회(회장 송도식)에서 건축 기금을 봉헌, 기념관 건립을 제안했다. 두 사람은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에 포함된 순교자로, 시복 예비심사 절차를 밟고 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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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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