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독일이나 프랑스에 가서 당황하는 것 중 하나가 상점들이 일찍 문을 닫고, 휴일에는 아예 열지 않는 것이다. ‘주일은 쉽니다’라는 안내판도 없다. 이 때문에 휴일에 쫄쫄 굶지 않으려면 장을 미리 봐둬야 한다.
앞으로 동유럽 폴란드에서도 그래야 할 것 같다. 폴란드 의회가 휴일에 상점 영업을 금지하는 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하원에서 이미 254 대 156으로 법안이 통과됐다.
법안에 따르면, 올해는 매월 첫째ㆍ마지막 주일에만 상점 문을 열 수 있고, 내년에는 마지막 주일만 가능하다. 2020년부터는 모든 주일에 영업이 금지돼 쇼핑이 불가능하다. 동네 빵집과 온라인 쇼핑몰, 그리고 크리스마스 같은 큰 명절을 앞둔 주일은 예외다.
법 제정 취지는 근로자들에게 가족과 함께하는 휴일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이 법을 청원한 전국노조연합 측은 “슈퍼마켓 종업원들은 휴일에도 저임금과 초과 근로에 시달린다”며 “이 때문에 가족들까지 어려움을 겪는다”고 밝혔다. 또 “폴란드도 자본주의와 소비 만능주의가 통제를 벗어난 상황”이라며 휴일(주님의 날)이 ‘밀린 쇼핑하는 날’이 되어가는 세태를 막기 위한 취지도 있다고 말했다.
폴란드는 그동안 세 차례나 법 제정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집권 여당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상원에서도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폴란드 주교회의는 “결과를 낙관하기는 이르지만, 모든 사람이 휴일 노동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게 우리 입장”이라고 밝혔다.
서구 사회에서 근로자의 휴일 노동과 휴식 권리는 오래된 논쟁거리다. 폴란드 출신인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1년 발표한 회칙 「백주년」(CENTESIMUS ANNUS)에서 “오늘날 시행되는 법 제도와 산업화된 사회 관습이 실제로 주일 휴식에 대한 기본권을 보장해 주는지 물어봐야 할 것”(9항)이라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