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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신학 선구자 카마라 대주교 시복 가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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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종합】 브라질의 헬더 카마라 대주교의 시복을 위한 교구 절차가 2018년 12월 19일 마무리됐다. 남미 가톨릭교회의 상징이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목 방향에 기준점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는 카마라 대주교의 시복이 가시화되고 있다.

카마라 대주교의 시복 청원인 조시엘 고메스 신부는 “카마라 대주교는 우리가 가난한 이들과 맞설 힘없는 이들, 소외된 이들을 잊지 말라고 촉구하고 있다”면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들, 억압받고 고통받는 이들의 권리를 위해 싸워야만 한다”고 말했다.

1999년 선종한 카마라 대주교는 1964년부터 1985년까지 이어진 브라질의 군부독재에 저항한 교회 인사로 유명하다. 그는 인권과 민주주의, 가난한 이들의 권리 증진을 위해 힘썼다. 토지개혁을 옹호해 살해 위협을 받기도 했다.

카마라 대주교는 “내가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 주자 사람들은 나를 성인이라 불렀다. 그런데 내가 이들이 왜 가난하냐고 묻자 사람들은 나를 공산주의자라고 부른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남미교회에서 카마라 대주교는 해방신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다. 해방신학은 가톨릭교회 사회교리의 핵심인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주창했다. 해방신학은 마르크스의 계급투쟁을 옹호해 비판을 받았지만,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가난한 이웃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신학적 영성적 뿌리이기도 하다.

1909년 태어난 카마라 대주교는 1931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1952년 리우데자네이루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됐다. 카마라 대주교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4차 회기에 모두 참가했으며, 사목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작성에 큰 역할을 했다.

카마라 대주교는 브라질 군부가 집권하던 1964년 오인다-에세페대교구장으로 임명돼 1985년 군부집권이 막을 내리면서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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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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