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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칼럼] (34) 부활 시기를 지낸다는 것 / 셰이 컬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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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은 2000여 년 전 팔레스타인 출신의 한 유다인이 감시받고, 배신당하고, 박해받고, 누명을 쓰고, 비난받고, 버림받고, 체포되었던 비극적인 사건들을 우리가 기억하는 때이다.

그 출발점은 나자렛 사람, 사람의 아들, 하느님의 아드님인 예수님께 사형을 선고한 재판이었다.

부활절에 우리는 박해 받고 억눌린 이들이 일어나 큰 소리로 말하고 억압 세력에 도전할 수 있다는 신념과 희망, 결심과 회복도 기념한다.

억압의 십자가에서 고통 받는 이들도 일어나 새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들은 용감하고 담대하게 진리와 자유를 추구하며, 정의와 참된 민주주의와 평등을 향한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세력을 이기셨다. 그분의 영이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시며, 아직 머나먼 정의 사회를 향한 사회·정치적 변화를 이루기 위해 예수님의 가치들을 실천하라고 모든 이에게 영감을 불어넣으시고 격려하신다.

예수님은 이야기들을 통해 단순하게 가치들을 가르치는 교사셨다. 그분은 권력자들의 악행을 비판하고 권력에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회 활동가셨고, 그 대가를 치르셨다. 그분은 비판자셨고, 위선과 부당하게 얻은 권위와 악행을 드러낸 권력자들에게 위협적 존재셨다.

나자렛 예수의 제자들은 억울하게 비난받았고, 부패한 지도자들은 그들을 거스르는 거짓 뉴스들을 퍼뜨렸다. 국가 지도자들은 예수와 그 제자들을 짓밟아 죽이고 제거해야 할 ‘국가의 적’으로 규정했다. 오늘날 정의와 진리를 추구하는 많은 이들도 똑같은 일을 겪는다.

그때도 지금도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만연하다. 모두 좋은 일을 하고 있는데 왜 이런 것일까?

예수님께서 이끄셨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도덕적 가치들과 사회 정의와 평등, 여성과 어린이의 존엄, 노동자들을 위한 정당한 임금에 대해 가르쳤으며, 굶주린 이들을 먹이고 병든 이들을 고쳐주었고, 부자들에게 가난한 이들과 나누고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라고 촉구했으며,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주고 있었다.

권력자들과 부패한 지도자들은 국가와 성전 금고의 돈을 등쳐먹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무죄한 비판자인 예수님을 감시하고 괴롭히고 단죄하며 사형을 선고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신심과 덕행의 가면을 쓰고 위선의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오늘날도 아주 흡사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국가를 구하고 있다고, 국가를 구하기 위해서는 예수가 처형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무엇에서 구한단 말인가? 사회 정의와 사랑과 치유와 연민과 용서에서?

오늘날에도 그분처럼 인권 운동가들과 교회 사람들, 진리를 추구하며 거침없이 말하는 성직자들이 비난받고 단죄 받고 있다.

목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겸손하지만 매우 지혜로운 사람으로, 인간 본성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과 연민과 이해와 지식을 지닌 ‘영재’로 자라나셨다. 그분의 극적 메시지는 모든 이의 평등이었다. 부자는 가난한 이들이 더 이상 가난하지 않도록 나누어야 하고, 사회 정의가 다스려야 하고 억압은 끝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늘날 사회는 이 기준에서 멀리 동떨어져 있다.

그분은 예루살렘의 지배 권력에 도전하셨다. 백성은 부유한 엘리트 계층의 폭압을 두려워하며 살고 있었다.

오늘날에도 똑같은 억압과 박해가 존재하지만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비롯해서 정의의 원리와 공정한 법규범을 믿는 이들은 생명을 위해 용감하게 행동하며, 인권과 존엄, 환경, 가난한 이들과 토착민들을 위해 싸운다. 그들은 평화롭게 저항하며 목소리를 낸다. 참된 그리스도인, 참된 신념을 지닌 이가 된다는 것은 오직 이런 뜻일 것이다. 그들과 하나가 되자.

부활 예식 참례는 영적 체험이 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가톨릭 예식을 어느 때보다 더욱 고수하면서 오히려 문화 행사에 가깝게 느껴질 수도 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북돋우시고 목숨까지 바치신 복음의 가치와 사회 정의의 노력들을 위해 행동하려는 더욱 실천적이고 영적인 투신을 해야 한다.

병사들이 이 선하고 사랑 많은 분을 고문과 십자가 죽음으로 끌고 가려고 붙잡으러 오기 전에, 그분은 당신께서 몸소 살아내셨고 그것을 위해 죽기까지 하신 가치들을 떠올릴 수 있는 단순한 기억을 남기셨다. 그분께서는 유다인들의 파스카 식사를 하셨고, 그것을 제자들과 친구들과 나누는 우정의 소박한 식사로 변화시키셨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그분은 여전히 살아계시고, 그분의 영은 우리 믿는 이들에게 내려오신다. 최후의 만찬에 함께할 때면 기억하자. 그분께서는 발을 씻기신 분, 모든 이의 종이셨으며, 우리에게 인간 존엄과 곤궁한 이들을 섬길 기회를 주셨다는 것을.


셰이 컬린 신부
※셰이 컬린 신부는 1974년 필리핀 올롱가포에서 프레다 재단을 설립해, 인권과 아동의 권리, 특히 성학대 피해자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또한 아시아가톨릭뉴스(UCA News) 등 아시아 지역의 다양한 언론에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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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5-08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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