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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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칼럼] (40) 교회 안의 여성, 시대적 요청에 주목해야 / 윌리엄 그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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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사제직과 부제직을 세우시는 구절이 어디 나오는지 말할 수 있는가? 힌트를 주자면, 그런 구절은 ‘없다.’

바오로 사도가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주교와 더불어 봉사자를 언급한다. 또 바오로는 티모테오 1서에서 이 직무를 위한 자질을 설명한다. 봉사자의 자격을 열거하는 중간에 여성에 관한 문장이 하나 나오는데, 여기서 말하는 여성은 아마 여성 봉사자를 가리켰을 것이다(1티모 3,11).

사도신경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부제직으로 발전한 직무의 기원을 제시하고 있다. 사도신경을 보면, 교회의 실질적 문제에 응답하기 위해 일곱 사람이 임명된다. 공동체의 자선 활동이 점차 확장되어 모든 이를 공평하게 섬기는 일이 지도자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자, 공동체가 지도자들의 명령에 따라 그 봉사를 맡을 사람들을 선발한 것이다(사도 6,1-6).

주님 승천 이후 갓 태어난 교회는, 예수님 시대에는 없던 요구들과 기회들에 맞추어 가며 자신의 생활과 직무를 엮어가는 데 별 문제가 없었다.

주교와 사제와 부제의 성품 직무는 구체적 필요에서 생겨났다. 교회가 어느 정도 조직화된 공동체로 발전된 이후에 비로소 드러난 요구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생겨난 것이었다. 교회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방식을 결정지은 것은 ‘선례’가 아니라 ‘필요’였다.

교황청은 여성 부제 서품 문제를 연구하면서 역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1세기나 2, 3세기에 여성들이 우리가 성품 직무라 부르는 것들을 수행했는가 여부는 지금 큰 의미가 없다.

그때 지중해 유역에서 당시 상황에 맞추어 내놓은 해답들은 지금 21세기에는 그 자체로 소용이 없다. 의미 있는 것은, 그리고 참된 전통은, 시대와 장소의 문화적 상황과 요청들을 충족시키는 일에서 교회가 새롭게 나아가도록 이끄시는 성령의 현존에 대한 확신이다.

2000년이 흘러 교회가 참으로 보편적이게 된 때에 그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분명 지금은 다른 요청들이 존재한다. 옛 관행을 지속하거나 복구하는 것으로는 충족시킬 수 없고 충족되지 않을 요청들이다.

세계 많은 지역들에서, 여성을 대하는 교회의 태도에서 드러나는 불의와 부적절함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복음 선포가 방해를 받고 있다. 오늘날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게 존재를 인정받고 있다. 모든 곳에서 그렇지는 않지만 전 세계적으로 그런 흐름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니 오늘날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맞닥뜨린 요청은 남성과 여성의 관계와 역할이 점점 과거와는 다른 방향으로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응답하는 것이다.

여성이 성별 때문에 온전한 제자 직분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한 본보기가 우리에게는 있다. 그렇게 관행을 뒤집으셨던 분은 바로 예수님이셨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와 마리아를 방문하셨을 때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 앉아 있었다. 예수님께서 살아가시고 가르치셨던 세계에서, 그 장면을 목격하거나 루카 복음서를 처음 읽은 이들에게 그 모습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 의미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심지어 충격에 빠뜨렸으며, 마르타의 마음도 불편하게 했다.

스승의 발치에 앉아 있었다는 것은 스승의 제자였다는 뜻이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제자였다. 다른 제자들처럼 그분 발치에 앉을 당당한 자격이 있는 제자였다.

그러나 그 시대와 그 지역에서 여성들은 부엌에 매여서 마르타가 하던 그런 일을 해야 했다. 여성이 온전한 제자의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살아가시던 사회에서는 급진적 도전이었다. 마리아는 남녀평등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허락하셨을 뿐 아니라 마르타에게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고 이르시고,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이기까지 하셨다.

그로부터 오래지 않아,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마리아의 뒤를 따랐던 여자들은 이 몫을 빼앗겼다. 평등에 관한 예수님과 초기 교회의 급진적 관점은 오래 살아남지 못했다. 여성을 향한 관습적 태도는 심지어 여성들 사이에서도 너무나 강력했다.

많은 곳에서 여성을 향한 태도가 변화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른바 ‘통상적’ 사회 질서와 교회 질서를 전복시키는 듯한 것을 여전히 가르치고 계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도전받는다.

지금까지 그래왔다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윌리엄 그림 신부 (메리놀 외방전교회)
※윌리엄 그림 신부는 메리놀 외방전교회 사제로서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 주교회의가 발행하는 주간 가톨릭신문 편집주간을 지내기도 했다. 현재는 아시아가톨릭뉴스(UCAN) 발행인으로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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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7-30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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