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0일
교황청/해외교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글로벌 칼럼] (41) 로마를 배워라! / 존 알렌 주니어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영원한 도시’ 로마에서 해마다 신학생들과 만나던 시절, 그는 신학생들에게 ‘로마를 배우라(imparare Roma)’고 당부하고는 했다. 문장 자체는 이탈리아어 문법에 어긋나지만 교황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었다. “로마를 배워라!”

로마는 돌과 시멘트로 된 가톨릭 역사의 백과사전과도 같으며, 이 도시를 돌아다니며 주의 깊게 둘러보기만 해도 세계의 다른 곳에서는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교회에 관한 지식을 얻게 되리라는 뜻이었다.

바티칸에서 비교적 큰 뉴스거리가 없는 이 무더운 여름, 나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명령을 마음에 담고 우리 동네를 들여다보았다. 과연, 돌아가신 교황의 말씀은 맞았다. ‘바티칸 전문가’라는 소리를 들으며 이십 년 넘게 살아오면서도 전혀 몰랐던 사실들을 이참에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최근에 우리 동네에서 골목길 하나 떨어진 곳에 있는 식당을 새롭게 알게 되었는데,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그 식당에 가려면 ‘비아 몬테 델 갈로’라는 구불구불한 길을 내려가, ‘비아 그레고리오 세티모’를 건너서, ‘비아 카르디날레 실즈’ 쪽으로 내려가다가, ‘비아 델 코토렝고’로 올라가야 한다.

이 거리의 이름들을 간략히 살펴보자.

‘몬테 델 갈로’는 사실 우리 동네 이름이다. 이탈리아어로 ‘갈로’가 수탉이라 ‘수탉 언덕’이라고 언뜻 짐작하기 쉽지만 여기서 ‘갈로’는 ‘갈리아 사람’, 곧 프랑스 사람을 가리킨다. 1527년의 악명 높은 로마 약탈 동안 신성 로마 제국의 군대를 이끌고 이곳에 진을 쳤던 부르봉 왕조의 샤를 3세 공작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니 이 길은 ‘프랑스인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그 전투는 스위스 근위대가 유일하게 실제로 싸웠던 전투로도 기억된다. 189명의 스위스 근위대는 수천 명 규모의 스페인 침략자에 맞서 결연하게 싸우다가 전사하고 비록 42명만 살아남았지만 클레멘스 7세 교황이 안전하게 피신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샤를 3세 공작은 교황의 요새인 카스텔로 산탄젤로에서 날아온 포화에 전사하여 최후를 맞았다. 내가 생각하는 이 이야기의 경고는 “우리 동네를 어지럽히지 마시오”라는 것이다.

‘비아 그레고리오 세티모’는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그레고리오 7세 교황을 가리킨다. 11세기의 위대한 개혁가였던 그레고리오 7세 교황은 신성 로마 제국의 하인리히 4세와 서임권 분쟁을 겪으며 교황권의 독립성과 주권을 위한 선례를 세웠고, 성직 매매를 엄격히 꾸짖었으며, 성직자 독신제를 수호했다.

(오는 10월에 열릴 아마존 시노드에서 ‘비리 프로바티’(검증된 기혼 남성) 서품을 밀고 나갈 주교들이, 알고 보면 교회 역사상 성직자 독신제의 가장 강력한 옹호자 가운데 한 사람의 이름을 딴 거리에서 먹고 자게 될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다.)

‘비아 카르디날레 실즈’는 아우구스토 실즈 추기경의 이름에서 왔다. 실즈 추기경은 1920년부터 192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교회의 최고 법원인 교황청 대심원장을 지냈고, 그의 사촌 피에트로 가스파리 추기경은 교황청 국무원 총리로서 이탈리아의 수상 무솔리니와 라테라노 조약을 맺었다. 라테라노 조약은 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둘러싼 ‘로마 문제’를 종결짓고, 교황권이 뒤늦게나마 정교 분리의 원칙을 받아들이게 했다.

마지막으로 ‘비아 델 코토렝고’는 이곳에 세워진 주세페 코토렝고 성인에게 봉헌된 성당에서 따온 이름이다. 19세기 토리노의 산업화 영향 아래 태어나고 자란 코토렝고 신부는, 신자본주의경제로 야기된 국가와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 아무런 도움을 얻지 못하던 중증장애인들을 돌보는 여러 사회사업을 펼쳤다.

코토렝고 신부는 북부 이탈리아에 ‘하느님 섭리의 작은 집’을 세웠는데, 이 집은 곧 그의 성을 따서 ‘코토렝고’로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이탈리아에서 신체적 정신적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들은 보통 ‘코토렝고’라고 불린다.

이렇게 로마 우리 동네에서 식당으로 가는 길 10여분 동안 거리 이름에만 관심을 기울여도 교회와 세속 세계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네 개의 장면이 포착된다. 서임권을 둘러싼 중세의 논쟁, 르네상스 시대에 로마 약탈로 이어진 교황권과 세속 권력의 갈등, 라테라노 조약, 현대 가톨릭 사회 교리와 사회사업의 발전이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로마 어디에서든 이와 비슷한 교육적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로마를 배우라’고 한 것은 이런 뜻이었다. 그 가르침은 전혀 퇴색되지 않았다.


존 알렌 주니어(크럭스 편집장)
※존 알렌 주니어는 교황청과 가톨릭교회 소식을 전하는 크럭스(Crux) 편집장이다. 존 알렌 주니어 편집장은 교황청과 교회에 관한 베테랑 기자로 그동안 9권의 책을 냈다. 그는 NCR의 바티칸 특파원으로 16년 동안 활동했으며 보스턴글로브와 뉴욕 타임스, CNN, NPR, 더 태블릿 등에 기사를 쓰고 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9-08-12 등록

관련뉴스

말씀사탕2019. 9. 20

요한 1장 14절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사목지침서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인터넷 굿뉴스. [전화번호보기]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