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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칼럼] (52) 왜 교황은 아마존 문서에서 ‘기혼 사제’ 포기했나? / 존 알렌 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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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인들은 미 대선의 풍향계 역할을 하는 아이오와 당원대회에서 기술적 결함 때문에 선거 결과 대신 정보 공백에 맞닥뜨리는 허무한 경험을 했다. 2020년 대선을 앞둔 첫 싸움에서 어느 민주당 후보가 실제로 이겼는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다.

미국 가톨릭 신자들은 아마존 시노드 후속 권고 「사랑하는 아마존」(Querida Amazonia)을 읽은 뒤에도 이와 비슷한 일종의 기시감을 느낀다. 이 문서는 지난 10월 로마에서 열렸던 아마존 시노드 이후 열띤 기대와 추측을 불러일으켜 왔다. 오지의 시골 공동체들에서 봉사하기 위해 사제로 서품될 수 있는 ‘검증된 기혼 남성’을 뜻하는 ‘비리 프로바티’를 둘러싼 토론이 시노드의 가장 뜨거운 쟁점이었고, 시노드 폐막 후 사람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기다려 왔다.

마침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침묵의 소리뿐이다. 교황은 시노드 “최종 문서에서 이미 상세히 설명한 모든 쟁점을 다루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로 문서를 시작하며, 기혼 사제 논의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비리 프로바티를 지지했던 이들은 교황이 ‘반대’의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고 충분히 지적할 수 있겠으나, 마찬가지로 똑같이 반대자들도 교황이 ‘찬성’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실제로, 「사랑하는 아마존」을 읽어보면 시노드에서 기혼 사제 문제를 논의했는지조차 전혀 알 수 없다. 2014년과 2015년 가정에 관한 두 차례의 시노드 이후 나온 2016년의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에서 이혼한 뒤 재혼한 가톨릭 신자들의 영성체 문제를 다룰 때 했던 것처럼 각주에서조차 언급하지 않는다.

교황이 이번 문헌이나 아마존에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를 바라서 이렇게 침묵한 것은 분명 아니다. 사실, 「사랑하는 아마존」 발표를 준비하면서 교황의 측근이며 시노드의 주역 가운데 한 명인 브라질의 클라우디오 우메스 추기경은 전 세계 주교들에게 서한을 보냈는데, 서한에서는 무엇보다도 이 문서가 주목받을 수 있도록 기자회견 같은 행사를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그렇다면, 왜 기혼 사제를 포기한 것일까? 다섯 가지 정도의 설명이 나올 수 있다. 이 설명들은 서로 겹치기도 하며, 모두 하나의 큰 그림을 이룬다.

첫째, 프란치스코 교황은 독신제 문제가 아마존에 관련된 주요 사건이라고 여기지 않음은 분명하다. 그의 강조점은 언제나 더 큰 문제들, 가령 열대우림 보호, 토착민과 지역 공동체 보호, 토지 이용과 노동권 같은 사회 정의 문제들에 있었다.

대체로 교황은 교회 안의 내분은 그런 더 큰 의제의 곁가지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교황이 이번 문서에서 그리고 있는 네 개의 큼직한 꿈 안에, 핵심이 분명히 드러난다.

둘째,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미 시노드에서 기혼 사제 논쟁을 다룬 만큼 자신이 이 문제를 굳이 애써 다룰 필요는 없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서문에서 교황은 “실제로 아마존에 살면서 그곳의 어려움을 겪고 또한 아마존을 뜨겁게 사랑하기에 아마존 지역의 문제들과 쟁점들을 교황이나 교황청보다 더 잘 알고 있는 많은 이들의 참여로 얻어진, 시노드의 결론을 담은 최종 문서를 공식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고 밝힌다.

다시 말해, 명시적인 반대 선언이 없다면 시노드의 결론 ? 주교들의 2/3 이상이 비리 프로바티를 찬성한 ? 은 그 자체로 독립적이며, 교황의 다른 설명이 필요치 않다는 뜻일 수도 있다.

셋째, 시노드가 권고한 것은 사제 독신제 요건의 전반적 관면이 아니라 구체적 경우에 대한 식별이기에, 그런 경우가 생길 때까지는 사실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판결이 필요한 경우가 생기면 판결을 내리겠지만, 그 전에는 아니라는 것이다.

넷째,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라 추기경이 쓴 사제 독신제를 옹호하는 책에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이 글을 기고한 데서 비롯된 논란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지금 어떤 명시적 판결을 내리는 것은 전임자에 대한 거부 또는 양보로 비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섯째, 기혼 사제 문제를 회피하기로 한 교황의 전략적 결정은 아마존보다 세계의 다른 지역, 특히 독일을 내다본 것일 수 있다. 현재 독일에서는, 구체적인 몇몇 제한된 사례로가 아니라 원론적으로 사제 독신제 요건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볼 2개년 ‘시노드 여정’을 준비 중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마존의 상황에서 비리 프로바티에 관해 자신이 어떤 말을 하게 되면 곧바로 그 논쟁에 휩쓸려, 괜한 불을 붙일까 걱정하는지도 모른다.

결론은 이렇다. 「사랑하는 아마존」에 기혼 사제에 관한 분명한 결론이 없다고 해서 이 논쟁이 끝났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교황이 이 문제를 다시 끄집어내야겠다고 생각할 다른 시기, 다른 환경을 기다려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존 알렌 주니어(크럭스 편집장)
교황청과 가톨릭교회 소식을 전하는 크럭스(Crux) 편집장이다. 교황청과 교회에 관한 베테랑 기자로, 그동안 9권의 책을 냈다. NCR의 바티칸 특파원으로 16년 동안 활동했으며 보스턴글로브와 뉴욕 타임스, CNN, NPR, 더 태블릿 등에 기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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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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