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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칼럼] (54) 코로나19 시대의 신앙 / 미론 페레이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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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이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우리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코로나19가 우리 삶을 완전히 산산조각 냈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세계대전보다 더 많은 목숨을 앗아간 1918년의 스페인 독감 이후 100여 년 만에 세계의 수많은 나라와 민족들이 이토록 큰 공포와 충격에 빠졌다. 이 바이러스가 우리의 신앙생활, 우리의 믿음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코로나19는 대인접촉으로 주로 감염되는 만큼 각국 정부는 밀집된 형태의 모든 모임을 금지하고 대중교통체계와 다중이용시설들을 폐쇄했다. 거의 모든 종교에서 신자들은 함께 모여 기도하고 예배드린다. 그러나 지금은 정부의 명령에 따라 모든 종교 신자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도록 요구받고 있다. 기억하는 한 사상 처음으로, 전 세계에서 주일미사를 비롯한 온갖 예식이 중단되었다.

집에만 머물러야 하는 이들을 위해 텔레비전과 라디오와 인터넷이 발 빠르게 개입하여 가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나, 당연히 실제와 같을 수는 없다. 이런 상황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을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막막하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신앙에 어떻게 도전하는가? 지금 상황은 우리의 신앙을 더욱 개인적인 것으로 만들고, 지금까지의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게 한다.

인간은 습관의 동물이고, 그래서 우리 대부분에게 신앙은 주일마다 가족과 지인들과 함께 틀에 박힌 듯 되풀이하던 기계적 실천이었다. 그 신앙은 우리에게 위로를 주지만 더 이상 도전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정치적 박해의 시절처럼 비로소 처음으로 우리는 신앙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 없게 되었다.

말하자면 우리는 신앙주의라는 ‘눈먼 신앙’에서 식별하는 믿음으로 옮겨가도록 요구받고 있다.

우리가 식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모두 기계 문명이 주는 현대적 삶의 안락함과 편의를 사랑한다. 자동차와 냉장고, 항공 여행, 컴퓨터와 인터넷, 이런 것들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기계 문명이 어떻게 지구를 황폐화하고 오염시켰으며 우리를 자연에서 멀어지게 했는지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지구 온난화와 산성비, 극한으로 치닫는 기후는 우리의 기술 세계가 아무 문제없이 멀쩡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수없이 경고해 왔다. 코로나19는 끔찍할 정도로 분명하게 이를 일깨운다. 충격스럽게도, 우리는 기침과 재채기 같은 단순 증상이 감염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 잠재력을 가질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 신앙에 대한 도전은 우리의 식단과 노동과 여가 활동에서 자연과 더욱 조화를 이루는 삶처럼 우리가 평소에는 좀처럼 생각지 못했던 길들에 있다.

오늘날 이 세상은 많은 부분이 탐욕과 폭력에 기대어 있다. 다른 이들이 그저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더 단순하게 살 수는 없을까? 이는 우리가 지구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어 줄 것이다.

모든 세계적 유행병은 인간과 그들 주변의 비딱해진 긴장 관계를 가리켜 보여준다. 페스트든 콜레라든 에이즈든 코로나바이러스든 모든 전염병은 인류가 자연과 본래 맺은 계약을 깨뜨렸으며, 그래서 자연이 응징을 요구한다고 은유적으로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세계는 얼마나 더 오래 탐욕과 야심과 폭력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을 것인가?

코로나19는 우리 삶의 방식이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으니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일깨우는 경고음이 아닐까?

코로나19는 교회를 위해 울리는 경고음이기도 하다. 첫 번째 경고음은 1960년대 초반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울렸었다.

성당에서의 전례 예식이 중단됨으로써 가톨릭 신자들은 자신들이 기도하고 예배하고 신앙을 고백하는 방식에 물음을 던지고, 신앙주의에서 식별하는 믿음으로 옮겨가도록 요구받는다.

가톨릭 신자들은 무엇을 식별해야 하는가? 오늘날 그들의 신앙은 종파를 초월한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가톨릭 신자들은 예배와 예식에서 초교파적으로 다른 교회들과 접촉하며, 서로 존중하고 평화롭게 다른 신앙인들과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 안에 새로운 리더십, 포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섬김과 예언의 권위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아직 채워지지 않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문화의 염원, 여성과 젊은이들의 염원에 응답해야 할 절박한 필요가 있다. 그러나 백인과 남성 위주의 리더십이라는 헌 가죽 부대는 새 포도주를 남기에는 너무 해지고 낡은 누더기다.

어쩌면 코로나19가 우리 교회들의 문을 닫은 까닭은, 우리가 주변을 둘러보고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요한 4,24)를 드릴 수 있게 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번에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이 결정적이다. 최근에 교황은 코로나바이러스에 갇혀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 관해서 이렇게 말했다. “이런 새로운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는 여러분이 새로운 길, 새로운 사랑의 표현을 찾도록 주님께서 도와주시기를 빕니다. 결국에는 이것이 우리 자신을 재발견하는 아름답고 창의적인 기회가 될 것입니다.”


미론 페레이라 신부 (예수회)
예수회 사제로서 평생을 기자 양성 등 언론활동에 힘써 왔다. 인도 하비에르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소장을 지냈으며, 아시아가톨릭뉴스(UCAN), 라 크루아(La Croix) 등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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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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