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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의 아픈 역사들… 용서하되 끈질기게 기억하며 치유해야

강우일 주교가 풀어낸새 회칙 「모든 형제들」 <6·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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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치스코 교황이 폴란드 아우슈비츠 나치 죽음의 수용소에서 죽음의 벽을 만지고 있다. 【CNS 자료 사진】



7장 새로운 만남의 통로



오늘의 세계는 곳곳에서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치유의 통로를 요청하고 있다. 치유의 과정을 감행하고 새로운 만남의 통로를 의연하게 개척해갈 남녀 평화의 일꾼이 필요하다.

평화의 과정은 끈질긴 투신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진리와 정의를 참을성 있게 추구하고,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복수에 대한 갈망보다 훨씬 강력한 희망의 공유를 향해 한 발짝씩 전진해가는 투신이다. 진리는 정의와 자비의 동지다. 이 셋이 모두 평화의 건설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동지다. 진리는 복수가 아니라 화해와 용서로 이어져야 한다. 인간에 대한 모든 종류의 폭력은 인류 전체의 몸에 상처를 남긴다. 폭력은 더 많은 폭력을 낳고, 증오는 더 큰 증오를, 죽음은 더 많은 죽음을 가져온다.

우리는 이 고질적인 고리를 부수어야 한다. 진실한 화해는 새로운 사회, 즉 타인에 대한 지배가 아니라 봉사에 바탕을 둔 사회를 형성함으로써 성취될 수 있다. 참된 평화는, 한국 주교단이 제시한 바와 마찬가지로, 화해와 상호 발전을 추구하는 대화를 계속하며 정의를 실현하려고 노력할 때에만 성취될 수 있다. (2017년 8월 15일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한국 천주교회의 호소문’ 참조)

사회적 우정(social friendship)을 만들어가려면 어려운 시기에 서로 대립해온 집단들끼리 마주앉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의 가장 가난하고 상처 입은 부류의 사람들과도 새로운 만남을 이루어가도록 해야 한다. 가난한 이들과 수탈당해온 이들이 반사회적인 태도를 보이는 배경에는 그들이 오랫동안 겪어온 멸시와 배제가 원인으로 작동해왔다. 평온한 사회적 공존을 성사시키려면, 온전한 인간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고 불평등이 판을 치는 곳에 평화는 불가능함을 알아야 한다.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세상에서는 갈등과 공격이 항상 싹을 내밀고 자라나 언젠가는 폭발해버릴 충분한 여건이 갖추어져 있는 셈이다.

예수님은 폭력과 불관용을 용인하지 않으시고 힘으로 남을 억누르고 지배하는 일을 단죄하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마태 20,25)

복음은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도록 가르친다. 그러나 부패한 관리, 범죄인, 인권을 짓밟는 이들을 보고도 못 본척하는 것이 용서는 아니다. 압제자를 사랑하는 것은 그가 벌이는 억압을 용인하거나 묵인하는 일이 아니다. 압제자에 대한 참된 사랑은 그가 더는 억압을 자행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일이다. 그가 잘못 사용하고 있는 힘을 박탈하는 일이다. 분노에 불을 댕기거나 복수와 파괴에 사로잡히는 일은 우리 자신과 국민들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것이다.

불의하고 잔혹한 고통을 겪어온 이들에게 ‘사회적 용서’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화해는 인간의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사회 전체에 억지로 강요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큰 고통을 겪은 이들이 그 기억을 지우고 용서를 단행하는 일은 참으로 존경받아 마땅한 행동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들의 마음도 인간적으로 이해가 간다. 잊어버리는 일이 해결책은 아니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다. 쇼아(홀로코스트 대학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투하, 이러한 기억을 오늘의 세대도, 내일의 세대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기억을 간직해야 우리는 더 공정하고 형제적인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박해, 노예무역, 인종청소 같은 일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역사는 반드시 기억되어야 하고 그 기억은 갱신되어야 한다. 용서는 하되 잊어서는 안 된다.



강우일 주교 전 제주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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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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