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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 12세 교황, 2차 대전 당시 유다인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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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종합】 비오 12세 교황과 교황청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외교적 압박에 반대하고 유다인 구명을 위해 적극 노력했다는 증거들이 다시 제시됐다. 비오 12세 교황은 종종 나치 독일의 비인간적인 유다인 학살에 눈을 감고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비난을 받아왔다.

교황청의 기록 담당관인 요한 아이크스는 최근 「사무국, 비오 12세의 유다인들」(Le Bureau. Le Juifs de Pie XII)이라는 제목의 책을 통해 비오 12세 교황과 교황청이 나치 독일에 대해 외교적 경로를 통해 반대하고 유다인들을 포함한 많은 무죄한 이들을 구명하고 지원했다는 증거 자료들을 제시했다.

책에 의하면, 1944년 비오 12세 교황과 긴급회의를 한 당시 교황청 국무원 총리 주세페 말리오네 추기경은 “언젠가 교황청의 문서들이 공개된다면, 교황청이 얼마나 신중하게 장기적인 안목에서 행동했는지를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과 국무원 총리의 이날 회의는 나치 독일이 교황청의 공식적인 외교문서, 즉 나치 점령지역, 특히 폴란드에서의 가톨릭 신자들에 대한 탄압에 대해 항의하는 문서를 수령하기를 거절한 뒤에 어떻게 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교황청은 만약 교황청의 항의 서한이 나치 측에 전달되지 않을 경우 후일 교황청이 나치의 만행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고 비난받을 우려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책의 제목인 ‘사무국’은 당시 도메니코 타르디니 추기경이 이끌던 교황청 국무원 외무부를 지칭하는 용어다.

저자인 아이크스는 로마에서 30여 년 동안 거주했고, 10년 동안 교황청 국무원의 기록 담당관으로 업무를 해왔다. 그는 “국무원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탄압받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완벽한 국제적 네트워크를 보유한 유일한 외교 기구였다”고 말했다.

바티칸 사도문서고의 비오 12세 교황 자리에는 1938~1944년 유다인들이 교황청에 전달한 지원 요청이 2800여 건 기록돼 있다. 또 4000여 명의 유다인과 유다교 출신 그리스도인들의 운명이 기록돼 있다.

아이크스에 따르면, 비오 12세 교황은 나치 독일이 항의 문서 수령 거부는 거의 전쟁 선포와 같은 무게를 지닌 것으로 간주했다. 이에 독일 정부에 서한을 보내 이러한 거부는 “교황청에 대한 적대행위”임을 공식 통보하고 교황청이 이 문서를 전달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덧붙였다.

아이크스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책을 통해 교황청이 나치 독일의 만행에 침묵한 것이 아니라, 교황청의 인도주의적 활동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도록 신중한 외교적 노력을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밝혀진 통계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당시 로마에는 9975명의 유다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비오 12세 교황과 교황청 관련 부서들의 도움을 받은 유다인들의 수는 6381명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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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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