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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사는 사람들] 전현정 (유소사 체칠리아,광명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

모정과 의로운 분노, 장애인 활동가의 소명 심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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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명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 전현정(맨 오른쪽)씨가 활동가, 센터 이용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백슬기 기자

아들이 뇌병변 장애라는 사실이 엄마의 가슴을 늘 아프게 했다.

그런데 그 아픔이 어느 날 분노로 변했다. 장애도 안타까운데, 그로 인해 차별을 받는다는 현실은 참기 어려웠다. 그 분노는 적개심이 아니라 의로운 분노였다. 아들이 초등학교 취학 거부 통보를 받았을 때였다.

“학교 측에선 중증장애인을 위한 교사와 시설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어요. 우리 사회가 가진 장애가 크다는 걸 그때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내 아이가 다른 사람과 차별받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사회의 법과 제도를 바로 세우겠다고 다짐했죠.”



장애인 인권 활동 위해 사회복지사 돼

유치원 교사였던 엄마는 이때부터 중증장애인 인권 옹호 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것이 아들을 위한 길이기도 했다. 2008년의 일이었다. 엄마는 과감히 사회복지사의 길을 택했다. 그러고는 동료 복지사 두 명과 함께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열었다. 자비를 들여 활동해야 하는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중증장애인의 자립을 가로막는 사회 제도를 개선한다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고, 사회가 조금씩 바뀌는 것에 엄마는 힘을 얻었다.

2010년 12월, 그날도 아들은 여느 때처럼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들은 깨어나지 못했다. 아들 이름은 김한결, 나이는 10살이었다. 착하기만 한 아들을 데려간 하느님이 원망스러웠다.

“어느 날 문득 한결이를 만나려면 천국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마침 알고 지내던 발달장애 아동 어머니가 성당에 가서 함께 기도하자고 권유하더군요.”

이렇게 해서 엄마는 성당을 찾았고 신앙을 갖기 시작했다. 신앙은 아들을 떠나 보낸 엄마의 마음을 보듬어줬다. 또 사회복지사로서 다른 이들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줬다. 엄마는 마침내 지난해 6월 유소사 체칠리아라는 세레명을 가진 하느님 자녀로 다시 태어났다. 광명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 전현정(41, 수원교구 광북본당)씨 이야기다.

사회복지사로서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잘못된 제도를 바꾸려고 노력한 지 이제 만 6년이 됐다. 그동안 지역 사회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났다. 시에서 제공하는 장애인 특별 교통수단은 3대에서 16대로 늘어났고, 시장실도 중증장애인들과 면담을 위해 1층으로 옮겨졌다. 이렇게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에 전씨는 다시 힘을 얻는다.



아들은 하늘나라 갔지만 신앙의 힘으로

하는 일 자체가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일이다 보니 짜증 나고 힘들 때가 잦다. 그럴 때는 신앙이 큰 힘이 된다. “자비로운 마음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을 떠올리며 닮아가려고 노력해요.”

자신을 이 길로 이끌어준 아들 한결이는 이제 세상에 없다. 하지만 엄마 전씨의 일은 계속된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장애인의 자립을 방해하는 제도들이 많습니다. 나중에 만날 한결이를 위해서라도 포기하지 않고 이 일을 해나갈 거예요.” 백슬기 기자 jdar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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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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