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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나눔·섬김의 사제 故 이태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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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슈바이처, 살레시오회 이태석 신부가 암 투병 끝에 1월 14일 선종했다. 큰 사제를 잃은 살레시오회에 위로의 뜻을 전한다. 또 이태석 신부의 ‘신앙 삶’에 마음으로 함께해온 수많은 아프리카 후원회원들과도 상실의 아픔을 함께한다.

사제의 해를 지내고 있는 오늘, 이 신부의 죽음이 남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사랑의 가치를 몸과 마음으로 현실에서 실천해 내는 이가 극히 적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는 개인적 욕심과 욕망에 매여 있으면서도 입으로만 진리와 정의, 사랑을 말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신부의 삶은 이런 사회 풍조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 신부는 비움의 사제였다. 그에게는 욕심이 없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군 복무를 마치자마자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 의사(醫師)는 철학과 신학을 배우고 사제가 됨으로써 의로움을 좇는 의사(義士)가 됐다. 그리고 서품 이듬해에 한국인 신부로는 처음으로 아프리카로 갔다.

이 신부는 나눔의 사제였다. 그에게는 나눌 것이 넘치고 넘쳤다. 그는 진료와 교육의 사각지대였던 수단 톤즈 마을에 12개 병실을 갖춘 병원을 짓고, 하루에 200~300명의 환자들을 진료했다. 또 학교와 기숙사를 세워 가난한 어린이들을 가르쳤다. 음악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이 신부는 웃음의 사제였다. 그의 얼굴에는 늘 웃음이 가득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치더라도 유머를 잃지 않았던 그는 어려움을 겪는 다른 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줬다. 그는 암 판정을 받은 후에도 늘 웃음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올해가 이태석 신부 서품 10주년이 되는 해다. 짧은 삶이었기에 그를 기억하는 이들의 마음은 더더욱 아프다. 하지만 신앙인이라면 이 신부의 죽음을 죽음 그 자체로 바라볼 일이 아니다. 눈물을 흘리고, 마음으로 아파하는 것은 이 신부를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신부의 삶과 정신이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지금 여기서’ 땀 흘려야 한다. 그것이 이 신부를 진정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항상 낮은 곳에 머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따뜻한 사제, 이태석 신부의 영원한 ‘편안한 쉼’(安息)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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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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