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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신앙살이] (542) 진짜로 아파 본 사람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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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그 전 날 밤 잠을 제대로 못 잤는지, 아니면 나도 모르게 자는 동안 심하게 몸부림을 쳤는지…. 분명히 잘 땐 머리를 동쪽에 둔 것 같은데, 일어나보니 머리가 서쪽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어날 때 허리는 왜 그리 뻐근 뻐근한지. 그래서 일어나서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고 아침기도를 바친 후 성당 마당을 천천히 돌아보았지만, 아무래도 허리가 아팠기에 오후에 한의원에 가 볼 결심을 했습니다.

그날 미사 오신 신자 분들에게 물어물어 침을 잘 놓는다는 한의원을 소개 받았고, 버스를 타고 찾아 갔습니다. 재래시장 안에 있는 한의원이었고, 들어가자마자 마스크를 쓴 어르신들이 5명쯤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나는 허리가 아파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할머니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씀하시기를,

“아저씨, 아파 보이는데 내 옆으로 와 앉으셔.”

그 말에 나는,

“아니에요, 어르신. 저는 지금 서 있는 것이 편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몇 분의 시간이 흘러 그 할머니께선 진료실에 들어가고, 나 또한 20분 정도 기다린 후에 진료실에 들어가 근육통 치료를 받았습니다. 한의원 원장님께선 ‘내일도 꼭 와야 한다’고 당부하셨고, 나 또한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 후 사제관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 날, 전날과 비슷한 시간에 한의원을 갔습니다. 그런데 몇몇 대기자 분들 중에 어제 뵌 할머니도 계셨습니다. 할머니께선 소파에 앉아 계셨는데, 나를 보더니 말했습니다.

“아저씨구나. 밖에 날씨가 많이 덥지?”

그 어르신의 말에 나는 엉겁결에,

“예, 어르신. 날씨가 상당히 덥네요.”

“그래, 아저씨는 치료 잘 받고 있어? 오늘은 어디 아파 오셨어?”

“아, 예. 허리가 좀 아파서 침 맞고 있어요.”

“에이, 조심 좀 하지. 그래 물 갖다 줄까?”

‘아이고! 이게 무슨 상황이지! 어제, 오늘, 이렇게 딱 두 번을 뵌 할머니께서 물을 갖다 주시겠다니! 내가 그렇게 아파 보였나!’ 나는 손사래를 치며 할머니께 말했습니다.

“에이, 어르신, 물은 제가 갖다 드려야지요. 물 드릴까요?”

“아니, 아니 괜찮아. 좀 전에 마셨어.”

“어르신은 어디가 편찮으셔서 오셨어요?”

“응, 나, 여기 한의원, 1년 넘게 물리치료 받으러 오고 있어.”

“아, 그러시구나.”

한의원 대기실에는 조용했습니다. 그러다 그 할머니께선 또 다른 할머니께서 한의원에 들어오자, 나에게 했던 비슷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신기한 건 할머니들끼리는 그날 처음 만난 것 같은데,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통하는지, 순식간에 할머니 두 분은 자매가 된 듯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나는 우연히 그 할머니 목 뒤에 남아 있는 대수술 자국을 보게 됐습니다.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매일 물리치료를 받는다는 할머니 말씀을 생각해 볼 때, 어쩌면 그 할머니께선 대형 사고를 당해서 큰 수술을 받은 듯 했습니다.

순간! 그 할머니의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를 어제, 오늘, 단 두 번 본 것뿐인데 무척 걱정해 주시는 마음, 한의원을 찾아온 사람들 모두에게 먼저 말을 걸고 눈인사를 하시며 어디 아픈지를 물어보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혼자 생각해 봅니다.

‘아! 그 할머니께선 당신이 정말 크게 아파보셨기에, 아픈 사람들 모두에게 관심이 많은 것이 아닐까!’

그렇습니다. 어쩌면 진짜로 아파 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은 잘 아는 것 같았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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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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