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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143) 경제논리로 접근하는 시간선택제 교사제

삶의 스승 없는 학교는 ‘지식 거래장’
생활지도 단절돼 교육 질 저하 우려
교사는 지식 전달자, 피해는 학생 몫
지식·인성 갖춘 ‘전인교육’ 실현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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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국가와 사회 발전 주춧돌을 놓는 일이기 때문에 예부터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교육분야에도 경제논리가 깊숙이 침투하면서 백년지대계가 흔들리는 일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시간제 일자리 창출 방침에 따라 올해 교원임용 때부터 정원의 3(약 600명)를 시간제교사로 뽑겠다는 교육부 정책입니다. 2015년 800명, 2016년 1000명, 2017년 1200명 등 앞으로 4년간 3600명을 채용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정규 교사 근무 시간의 절반만 근무하는 시간선택제 교사는 정규직 교육공무원으로 주 5일간 오전이나 오후에만 근무하거나, 요일마다 자신이 원하는 근무시간에 하루 4시간 주 20시간 근무합니다. 그러면서 교과 수업, 학생지도만을 담당하고 행정업무는 맡지 않습니다. 언뜻 보면 효율적인 제도처럼 보이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적지 않음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현재도 교육현장에는 정규 교사 외에 기간제 교사, 영어회화 전문강사, 체육 전문강사, 시간강사, 방과후교사, 특기적성강사, 보조교사(특수학급), 인턴교사(과학) 코디네이터 등 다양한 교사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교육정책이 바뀔 때마다 예산절감을 이유로 정규직 교사의 비율을 줄이면서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목으로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 교사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행정 업무를 맡지 않고 수업만 하고 퇴근하는 시간선택제 교사까지 등장한다면 학교는 어떻게 될까요? 담임도 맡길 수 없고, 학생 상담도 할 수 없고, 수업 준비와 교재 연구도 집에서 알아서 하는 교사로 채워진다면 학교의 효율적 인격교육, 건실한 발전은 실종되고 말 것입니다.

정부의 논리에는 교사를 단순한 지식 전달자로만 여기는 시각이 깔려 있습니다. 교육은 수업시간에만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학생의 등교지도부터 복장지도, 질서지도, 인성지도, 진로지도, 자기주도적 학습지도, 진로상담 등 등교 때부터 교문을 나서는 순간까지 학교생활의 모든 것이 교육의 대상임에도 이런 면에 대한 고려는 없는 듯합니다. 수업만 하고 가는 시간선택제 교사 아래서는 기본적인 생활지도는 물론 함께하는 공동체생활, 이웃에 대한 배려, 나눔 등 그리스도교 교육에서 강조하는 목표가 이뤄지기 힘듭니다.

이처럼 시간선택제 교사제도는 교육정책이 아닌 경제정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는 학생들입니다. 같은 교과를 두 명의 교사가 나눠 가르친다면 단절적인 수업으로 연속성과 일관성을 잃게 되고, 시간제 교사가 늘어날수록 그만큼 학생 지도에도 허술한 틈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교육 전반의 질이 떨어지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바람직한 교육 방향과 방법을 유추해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늘 제자들과 함께하시면서 몸소 모범을 보여주십니다. 그랬기에 제자들은 자신들의 목숨까지 바쳐가며 주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모름지기 교육은 지(知)·정(情)·의(意)를 모두 갖춘 전인(全人)을 키워내는 일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존경받는 삶의 스승이 사라지고 지식 전달자에 불과한 기능적 교사만 존재한다면 교육현장은 참 지혜가 아닌 죽은 지식만을 거래하는 시장에 지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그리스도교 교육의 높은 이상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늘 깨어있는 자세를 지녀야 할 것입니다.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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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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